시작의 순간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정말 운동을 싫어하는데 달리기 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순간이 나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절대 달리지 않았을 나인데, 깜빡이는 파란불이 아까워 달려버렸다. 파란불이 깜빡일 때 가까스로 안전하게 길을 건넌 뒤, 빨간불로 바뀌었다. 나와 같이 뛰던 꼬맹이가 건너편에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꼬맹이가 더 빠를 것이라 예상했는데, 내가 더 빨리 달려버렸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 꼬맹이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더 나가니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달리기를 못했고 늘 꼴찌였기 때문이다.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꼬맹이를 보는데,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친구들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꽤 있었던 나는 운동회가 제일 싫었다. 국민학교 운동회는 동네의 잔칫날이기도 했던 그 시절,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나의 달리는 모습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운동회 날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울렁거리고 밥맛도 없어질 정도로 달리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외할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달리는 모습이 꼭 바둑이 같다고 했다. 날렵하게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이처럼 천천히, 어떤 때는 엇박자로 뛰고 있다는 것이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므로 바둑이처럼 뛴다는 외할머니 말씀에 동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달리기만 하면 항상 맨 마지막 주자로 들어오니 창피함을 넘어서 끔찍했다. 왜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하는지 정말로 모를 일이었다. 분명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고 있는데 늘 같이 뛰던 친구들 전부 내 앞에 있었다. 달리기를 마친 후, 엄마는 나를 향해 놀리듯 말했다. 또 꼴찌냐?! 괜찮다! 다음에 잘 하면 되니까.
그러나 엄마의 그 말은 공허했다. 다음에도 역시나 꼴찌로 들어올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달리기에 대해 극도로 소심한 태도로 살아왔다. 그래서 꼭 뛰어야 버스를 탈 수 있는 상황인데도 뛰지 않았다. 뛰어봤자 나는 그 버스를 놓치고 말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다. 파란불이 깜빡이면 일부러 더 늦게 걸었다. 어차피 난, 건너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방금 파란불이 깜빡일 때 최선을 다해 뛰었고 성공적으로 건넜다. 게다가 극적으로 빨간불로 바뀌며 함께 뛰었던 꼬맹이는 건너지 못했다. 체급이 같은 사람이랑 뛰어서 혼자만 건넌 것이 아니라 다소 민망하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달렸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컸다. 절대 달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처럼 굴며 살아왔는데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몇 십 년 만에 전력을 다해 뛰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것처럼 힘든데 묘하게 기분이 좋다는 사실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특별히 빠르게 뛰는 심장이.
문득,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절대 달리지 않을 것 같은 내 가 열심히 달려서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넜기에 가능해진 예감이다. 그리고 결국 달리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갑자기 또 다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발끝부터 기쁨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