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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Sep 15. 2023

질리지 않는 맛

시작의 순간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나의 주 일터는 부엌이 된다. 부엌에서는 재료 준비와 조리, 식사, 설거지까지 마치는데 평균 2시간이 소요된다. 하루 세 끼니이니 6시간은 기본이고, 간식 준비 시간까지 합치면 평균 7시간은 부엌에서 노동을 하는 셈이다. 재료값과 나의 노동력을 생각했을 때, 매 끼니 외식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은 물론, 7시간 노동을 할 시간에 차라리 돈을 버는 게 낫다는 계산에 이른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해볼까도 싶었지만, 매 끼니 식당 찾아 나서는 것도 일이고, 7시간 동안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확신도 없기에 헛웃음 한 번 짓고 잊기로 했다.     

 결혼 16년 차, 육아도 16년 차인 나는 가족들 맞춤형 요리에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남편과 함께 먹을 때는 고기를 이용한 요리, 아이들만 있을 때는 분식 위주의 요리를 하면 한 그릇 뚝딱 비워내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문제는 너무 같은 요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집밥 메뉴가 뻔하다보니, 늘 같은 메뉴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간다. 다행히도 가족들이 질리는 시점을 파악하기 쉽다. 평소 먹는 것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아이들이, 질릴 때쯤 되면 한두 숟가락 먹다가 배부르다고 자리를 뜨는 것이다. 말을 착하게 하는 아이들이라 질렸으니 그만 좀 주라는 말도 못하고, 배부르다고 표현한다. 그때마다 나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이제 또 어떤 메뉴를 해줘야 잘 먹을지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일주일에 두 번이나 김밥을 싸줬는데 신나게 먹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김밥을 싸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반복되듯, 사람 사는 모든 일들이 반복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했다가 지겨워져 싫어하고, 겨울의 눈이 좋았다가도 추워서 싫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소위 '금사빠'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금사빠'라고 하는데, 나의 경우 이성에 관해서는 무덤덤하고 '새로운' 것에 금사빠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보면 관심이 커진다. 최근, 이슬아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가 쓴 모든 책을 다 읽은 것은 물론 어느덧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90년대에 태어난 그녀는 무엇이든 시작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모든 시작의 발판은 생계에서 비롯되었다. 넉넉하게 후원해주는 집안이 아니라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교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매일 에세이를 써서 이메일로 전송하는 글쓰기 노동자의 삶도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게 용감하고 멋진지, 나보다 어린 그녀지만 존경의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녀처럼 글 쓰는 노동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즐거운 월요일을 위한 에세이를 이메일로 전송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리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주간 월모닝'을 통해 쓰는 삶을 이어가고 있으므로 만족스럽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일주일에 한 번씩 김밥 싸주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닭죽이 그랬듯, 언젠가는 김밥 또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좌절만 할 내가 아니다. 생을 사랑하듯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메뉴를 발견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없듯, 완전히 질리지 않는 맛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떤가. 나는 또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시작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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