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리 Sep 15. 2023

거울 앞에서

시작의 순간

 내가 보였다.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나는, 20대 후반이다. 40대 초반인데, 여전히 20대 후반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20대 후반 출산을 한 뒤로 거울 속 나를 자세히 본 적이 없다.     

 3개월 전, 거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중년의 여자, 그러니까 나 때문이다. 거울 속 나를 자세히 봤던 일이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더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왜 갑자기 거울 속 내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을까?     

 내 인생 마지막 육아가 될 막내 아들이 9살이 되었다. 9살은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다. 혼자 화장실을 가고, 혼자 잠들 수 있으며, 혼자 옷도 입고, 혼자 방 정리도 한다. 오직 식사만  차려주면 된다. 덕분에 아이 얼굴만 바라보던 내가 뻘쭘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며, 혼자 자겠다고 했을 때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생각의 중심이 아이가 아닌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챙기는 삶이 줄어들수록 나를 챙기고, 나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거울 속 나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많이 늙었다. 미세하지만 주름도 있고, 유전으로 인해 흰머리도 무수히 많다. 한 달에 두 번은 염색을 하는데, 일주일만 지나도 흰머리가 올라온다. 게다가 살이 많이 쪄서,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이 글을 보는 가족들은 무슨 소리냐며, 살은 10년 전부터 쪄 있었다고 할 게 뻔하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만큼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얼굴에 작은 점 하나, 여드름 하나만 생겨도 속상해하며 연고를 바르던 나는 머나먼 과거에 묶여 있다.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욕구는 밧줄로 꽁꽁 묶어 두고, 오로지 가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데 온 힘을 써 온 것이다. 이점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에게 엄마로서, 아내로서 열심히 살았다고 큰소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서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나라는 소중한 인간의 욕구를 배제하고 희생해서 좋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내 부모에게 그랬듯, 자녀들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급급하여 부모의 희생을 생각하고 고마워 할 겨를이 없다. 학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 양육과 일에 치여 살아가기도 버거운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처럼, 지금의 우리처럼 말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식단관리를 시작하고 소소하지만 런닝 머신에서 40분씩 걸었다. 워낙 운동을 안 하고 살았고, 입에서 달라는 대로 먹으며 살아온 인생이라 3개월 만에 7킬로그램이 빠졌다. 물론, 여전히 빼야 할 살이 많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이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묻혀 있던 이목구비가 서서히 드러나고 어깨에 묻혀 있던 목도 형태를 드러냈다.

 한 달에 두 번 하던 염색도 세 번으로 횟수를 늘렸다. 흰머리가 드러나는 순간 염색을 해버리는 것이다. 언젠가는 흰머리로 사는 것이 익숙해질 순간이 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덕분에, 거울 앞에서 나는 한껏 입 꼬리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20대 후반, 스스로가 마음에 들어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던 것처럼.     

 다시 시작되었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꿔주는 시간이.     

이전 04화 리코더 합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