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리 Sep 15. 2023

고운 말 바른 말

시작의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힘을 주는 김창옥 강사의 강의를 즐겨 듣는다. 직접 현장에 가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음은 큰 행운이자 행복인 것 같다. 김창옥 강사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가 성장하며 들은 말의 형태가 내 어린 시절과 꽤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욕이 들어간 말들인데, 그가 느꼈던 상실감과 실망, 외로움들이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들과 많이도 닮아 있었다. 김창옥 강사는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말의 형태를 '모국어'라 했다.      

 나의 모국어는 꽤 거칠고 황량했으며 마음을 매우 힘들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1950년대 초에 태어난 부모님은 말끝마다 욕을 붙이셨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인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하면 엄마는 '지랄들하네'로 응수하셨다. '지랄들하네'는 딸인 나를 옹호하는 말이다.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의 모든 행위가 지랄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를 위로하는 엄마만의 언어였다. 그러나 '지랄들하네'라는 언어가 주는 분위기 자체가 위로보다는 비난을 하는 느낌이 강했다. 문제는 부모님의 거친 언어들이 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그 거친 모국어들이 나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고, 나를 옹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늘 듣기 힘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러니까 사춘기라는 것이 오기 전까지의 나는 욕을 꽤 잘 하는 사람이었다. 듣고 자란 모국어가 욕이 붙은 말들이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욕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물론 비슷한 세대, 비슷한 환경에서 양육하는 부모님을 둔 덕에 친구들 대부분 욕을 잘 했다. 요즘도 놀이터를 가면 숫자 18과 관련된 욕을 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아이들 부모의 언어 습관도 그러하리라 예측해본다.

 해맑고 순수한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욕을 써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욕을 하던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심지어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2학기가 되고, 사춘기라는 녀석이 조금 빨리 찾아왔다. 잘 놀던 남자 친구들과 둘이 노는 것이 어색해지고,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도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말수가 점점 줄었고, 누군가에게 욕이 섞인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친구들은 내게 욕이 섞인 말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친구가 너무 싫어졌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욕이 섞인 대화를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무척 부끄러웠다. 나를 칭찬할 때조차 '똑똑한 년'이라고 하시는데, '년'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척 경멸스러웠다. 경멸의 감정을 느끼고부터 나는 욕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철이 들면서 싫은 것을 계속 하고 싶지 않다는 자아가 커진 것이다.      

 문제는 대화를 지속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었다. 친구나 부모님이 욕이 섞인 말을 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어버렸다. 욕을 들어 기분이 나빠졌으므로 웃으며 받아들이고 싶지도,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점점 내성적인 기질이 커졌다. 사람들은 그런 내게 내성적이고 말이 별로 없는 아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문제는 나의 사회성이었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있던 친구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당시, 시골 초등학교에서 욕을 하지 않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결국 나는 '웃는 아이'가 되었다. 대화를 지속하기 어려우면 그냥 웃어버렸다. 웃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한 것이다. 마음에 안드는 대화일 경우 활짝 웃으며 그 상황을 무장 해제시켜버리는 것을 택했다. 덕분에 웃음이 많고 착한 아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맞서 싸울 힘도, 의욕도 없는 어린 내가 선택한 것은 웃음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내가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웃음으로 끊어버린 것이 자랑스럽다. 물론, 문득 문득 나의 모국어가 튀어나오려 할 때가 있다. 누군가 나를 너무 부당하게 대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접하면 어릴 때부터 들었던 욕들이 튀어나오려 한다. 사람은 모국어를 쉽게 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았을 때 그 끝이 그리 개운하지 않음을 알기에 꾹 삼켜버린다.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 상황이 있다면 참기보다는 일단은 거부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의 원인을 파악하는 시간이 보다 건강한 삶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욕을 듣고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드는데 꾹 참아냈다면 지금도 욕을 참 잘 하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불편하고 싫은 것을 거부하고 하지 않으려 결심하는 마음, 바르고 고운 말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시작의 순간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전 02화 미역국 장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