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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Sep 15. 2023

미역국 장인

시작의 순간

 첫째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둘째 아들을 볼 때마다 드디어 육아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차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옷을 갈아입으며, 혼자 잠자리에 드는 것은 물론 화장실에서의 뒷처리도 혼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들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어딘가 어설퍼 도와줘야 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니 마무리가 제법 그럴 듯하다. 물론 세심하게 보면 바지 좀 더 올려주고 싶고, 손톱 밑에 낀 때도 빼주고 싶지만 꾹 참고 있다.  

 첫째와 둘째 터울이 7년이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육아의 시간이 길어졌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의 또래 엄마들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를 보며, 언제 키우냐는 안쓰러움의 눈빛을 보낸다. 그 눈빛의 의미는 '다 안다. 그래서 더 안쓰럽다.'의 눈빛에 가깝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전우애다. 그 분들의 눈에는 내가 마치 군대를 재입대한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기에,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둘째를 낳아 갓난쟁이를 키우는 내 모습은 그 분들에게 안스러움의 결정체였다. 갓난아기를 키우느라 정신없는 가운데, 1학년 첫째의 받아쓰기를 불러주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군에 재입대를 한 것이다. 재입대를 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갓난아이를 다시 키운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고생길을 다시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는 둘째를 보면 매일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표현이 없을 정도로 너무 예쁘다. 마침 첫째가 사춘기를 겪어내느라 고민이 많은데, 이제 막 초등학교 저학년인 둘째의 애교와 천진난만함은 피로한 일상에 한줄기 빛이요, 비타민이 되어준다. 물론 첫째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둘째가 갓난아기라 잠도 못자고 힘들어할 때, 첫째가 물티슈도 가져다주고, 기저귀도 가져다주며 큰 힘이 되어줬다. 게다가 애교가 많아 볼에 두 손을 가져가 '뿌잉 뿌잉'을 해줄 때면, 피곤이 싹 사라지는 듯 했다.      

 약 16년이라는 육아의 기간을 겪어내며, 내외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 그중 가장 큰 성장은, 미역국을 끓이는 솜씨다. 어린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정적이라, 미역국을 자주 끓였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실력이 늘어, 깊고 진한 미역국의 맛을 낼 줄 알게 되었다. 뭐든 계속 하면 는다는 말이 딱 맞았다. 결혼 후 막 음식을 시작했을 때, 어떤 음식이든 간이 부족하고 깊이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도 위축되어 음식하기가 두려워지고, 양가 부모님께서 가져다주는 음식에 의존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양가 부모님께서 주시는 음식만으로는 턱도 없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두 아이가 미역국을 잘 먹어 일주일에 두세 번은 미역국을 끓였던 것 같다. 덕분에 아이는 종종 미역국 먹고 싶다는 말을 하고, 끓여주면 엄지를 추켜세우며 만족을 표현한다. 

 며칠 전에도 둘째 아이가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해서 소고기를 많이 넣어 깊고 진하게 끓여 주었다. 그랬더니 미역국을 사발 째로 들고 마신 아이가 감동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엄마는 미역국 장인이야."     

 뭉클해졌다. 갓난아이가 어느새 커서, '미역국 장인'이라는 말도 해줄 줄 알다니! 나는 늙었지만 아이의 눈부신 성장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느라 남들보다 경력이 조금 뒤쳐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보상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문득, 인간에게 헛된 삶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갈아 넣어 집중한 육아의 기간이 있었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마음껏 맛있게 끓여줄 수 있었고 그 또한 아이의 삶에 힘의 원천이 될 테니 말이다. 무엇이든 헛된 것은 없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내 삶을 더욱 사랑하는 시작의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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