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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Sep 15. 2023

소식

시작의 순간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그 사람이 쓴 글이 감독의 손에 쥐여져 영상화 되었는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화가 난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글 쓰는 일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살아온 사람인 것은 물론, 나처럼 간절히 글 쓰는 일을 원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남편의 친한 형님이었다. 내가 드라마작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은 나의 지인이라면 다 안다. 그러나 내가 쓴 시나리오가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기적 같은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육아를 하면서도 틈 날 때마다 드라마 극본을 써서 공모전에 냈지만, 늘 깜깜 무소식이었다. 문득, 공모전 도전은 바위에 계란치기처럼 처음부터 가능성 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친한 형의 시나리오 영상화 소식을 전하자, 괜히 심통이 나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가 나를 조롱한 것도, 남편이 나를 비난한 것도 아닌데 소식 자체가 모욕적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는 단 한 번도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간절히 꿈꾼 적이 없다.     

 급기야, 그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가 만들어져 영상화되었다. 유명한 제작사나 유명한 감독이 만든 작품이 아니라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영화시나리오 작가가 기록될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꿔본 적 없는 그로서는, 그 필모그래피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게는 매우 중요하고도 간절히 바란 필모그래피였다. 그래서 나는 자꾸 심통이 났다. 물론 그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든, 운이 좋았든 어쨌든 그것은 그의 능력이고 그에게만 다가온 기회였기 때문이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으니, 하필이면 그의 주변에 감독이 있었고 하필이면 그가 잘 아는 정치 관련 시나리오였다니 나로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내 주변에는 감독이 직업인 지인이 없고, 정치는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그 날 내내 남편에게 툴툴거렸다. 남편이 영화시나리오작가의 지인이 된 것과 하필이면 드라마작가 지망생인 내게 그 소식을 전했다는 것에 심통이 났기 때문이다. 안다. 내가 나쁘다. 그런 일로 심통 부리고 툴툴거리면 아마도 내 옆에 남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바란 적 없는데 행운처럼 기회가 다가오고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데 단 한 번의 기회도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으로는 내 것이 아닌 것을 쳐다보지 말자고 다독이지만, 가슴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기독교 신자인 나는 하나님께 따져 물었다. 왜 저는 안 되고, 그 사람은 되는 것이냐고 말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그런 내가 얼마나 못나 보였을지...... 자식 중에도 잘 되는 자식이 있고 못 되는 자식이 있다. 그런데 못 되는 자식이 왜 형처럼 잘 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면, 부모로서 무슨 답을 해줄까?

 시기심에 휩싸여 괜히 툴툴거리던 어느 날, 화장실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았다. 참말로 못생겼고 보기 싫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뭐, 대체 뭐가 네 인생에 방해를 했단 말인가? 거울 속의 내게 따져 물었다. 그가 영화시나리오 작가가 된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일 뿐이다. 내 능력을 빼앗아 이룬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필이면 남편의 지인이라서? 오호라! 그렇구나! 나는 쪽팔렸던 것이다. 10년 넘게 드라마작가 지망생을 자처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는 내가, 모든 것을 아는 남편 앞에서 괜히 부끄러웠던 것이다.      

 결국은 내 문제였다. 그날 밤, 무릎 꿇고 기도하며 회개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겠노라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겠노라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겠노라고.

 남편 지인이 영화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은 분명 내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성공과 성장을 진심으로 축하해줘야 내 모든 것이 평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현재, 그 분은 또 다른 일을 하고 계신다. 그 분에게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간절한 꿈이 아니라 지나가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현재는 드라마 작가의 꿈을 95% 내려놓았다.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5%는 인간적인 미련이다. 미련까지 깨끗이 버린다면 아마도 나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는 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까지 인정하며 내려놓았던 그 순간, 그 순간은 내가 조금 더 성숙하는 시작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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