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열여섯, 밤마실

기쁘게 살기 프로젝트

by 류혜진

저녁을 일찍 먹고 둘째 아이와 아파트 공터로 나갔다. 아이는 마스크를 낀 채, 자전거를 탔다. 아직 여섯 살이라, 나의 모든 시선과 신경이 아이를 향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탈 때 참 행복해 보인다. 마스크를 끼고 자전거를 타면 숨이 찰 법도 한데, 마스크가 답답하다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반면, 어른인 나는 밖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이 참 답답하다. 그래서 저절로 인상이 써진다.


아이의 웃고 있는 눈을 보고 있자니, 참 선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애써 웃어본다. 아이는 지금 이 코로나 시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는 단순하다. 엄마가 써야 한다고 하면 쓴다. 엄마가 먹으라고 하면 먹는다. 엄마가 잘 시간이라고 하면 잔다.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서일까? 본래 순한 아이여서일까? 어찌 되었든, 참 다행이다. 마스크를 끼고 자전거를 타면서도 웃을 수 있는 아이라서. 그 아이가 내 아이라서.


만약, 아이가 마스크 끼는 것이 답답하고 싫다고 했다면 내 마음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마스크 끼고 유치원 가고, 마스크 끼고 자전거 타고, 마스크 끼고 산책 가는 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키즈카페에 가지 못하고, 여행을 마음껏 다니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은 있다. 그마저도 없다면 사람이 아니겠지.


어둑어둑해지자, 아이는 집에 가자고 한다. 자전거를 더 탔으면 좋으련만, 어둑해지는 것이 조금 무서웠던 모양이다. 남편은 열세 살 첫째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갔단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는 자기도 드라이브 가고 싶단다. 아파트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아이와 손잡고 서 있는데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불쌍해 보인다. 마스크 끼고 다정히 산책하는 모녀도, 손님 없는 토스트 가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점 주인도, 경비실에서 눈이 벌게져서 밖을 바라보는 경비아저씨도, 식구들 위해 무겁게 장을 봐서 가는 어느 여인의 모습 모두.


아이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나가는 어느 아저씨를 보더니, 내게 이르듯 말한다.

"엄마, 저 아저씨. 마스크 안 썼어."


너무 크게 말해서 조금 민망했지만, 그 아저씨 귓속에도 잘 들렸길 바랬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망가진 세상이다. 이제 막 태어나 아름다운 세상만 보기도 벅찬 아이들에게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란다. 나 역시.


적어도 어른이라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마스크라도 잘 쓰고 다녀야 한다. 어린아이들도 마스크를 쓰고 유치원에 가는 마당에.


남편의 차가 정문에 도착하고, 우리는 탑승했다. 옛날 같았으면, 어디 빙수집이라도 가서 신나게 이야기하며 빙수를 먹었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치킨집을 지나며, 마스크 벗고 신나게 먹고 마시는 그들을 보며 나는 가슴 한 켠 서운하다. '저들은 아무렇지 않게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누린다면, 누군가는 참아야 한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참아주지. 그들도 같이 참아준다면 더욱 좋겠지만.'


창문 열고 드라이브하며 밤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밤마실을 하는 것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남편이 3교대를 하는 직업이라, 함께 밤에 나오는 일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이브 스루로 커피를 사고, 마스크 쓰고 마트에 들어가 아이들 음료수도 샀다. 차에서 마시는 음료지만 참으로 시원했고, 우리는 밤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예전 같았으면 시시했을, 참 별것 없는 밤마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특별하고 행복했다.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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