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열일곱, 장아찌에 밥 한 그릇
기쁘게 살기 프로젝트
엄마의 부엌에 들어가면 짠내가 난다. 소금이 가진 특유의 짠내.
이번 짠내의 진원지는 오이 장아찌다. 커다란 돌로 눌러 놓은 오이 장아찌가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어릴 때는 짠내가 싫었다. 엄마 옆에 앉으면 짠내가 났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5월 초, 어버이날 기념으로 식사를 하고 거의 두 달 동안이나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엄마가 사는 지역, 내가 사는 지역에 확진자가 있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문자가 왔다. '어르신 댁 방문 자제,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라고 말이다. 그까짓 문자, 무시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러 가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문자를 받아 들고 엄마도, 나도 만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서울에 부모님 만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 한창 확진자가 나오고 있던 순간이라 깜짝 놀랐다. 그러나 표현은 못했다. 서울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고 온 친구에게 '그래도 되느냐'라고 묻는 내가 이상해 보일까 봐.
겁쟁이..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도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상황을 상상하며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싶었지만 돈도, 연고도 없이 홀로 고시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 포기했다. 나는 겁쟁이였다.
2020년, 7월 20일. 지역 확진자 4명.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외식 한 번 하지 않는 내게, 남편이 살며시 말한다.
"오늘 같은 날은, 외식해도 돼. 전국에서 지역 확진자는 4명뿐이잖아."
"아니, 나는 싫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음식을 포장해서 먹는 것은 하고 있다. 하지만 식당에 앉아서 마스크를 벗고 앉아 음식을 먹는 것은, 코로나 시작 이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외식이 생활이었던 우리 가정에 매우 큰 변화였다. 나의 겁 때문에.
내가 다시 식당에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은, 확진자 0명을 한 달 동안 기록한 이후가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나의 소신이라 생각한다. 전염병으로부터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소신.
이틀 전, 이런 내게도 한계점은 왔다.
조심하고, 안 만나고 산지 벌써 6개월이 넘어가며 문득 '이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과 시가를 오고 가며 부모님을 만나고, 아이들도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귀여움 받으며 하하호호 웃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진 것이다.
그리움 끝에 우울함이 몰려오고, 우울함 속에서 어쩔 줄 몰라 '단 초콜릿'을 계속 까먹다가 큰 결심을 했다.
"엄마,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자. 우리가 갈게. 마스크 쓰고 만나서 서로 열 재고 소독약 뿌리면 되잖아."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통화를 마치고, 다시 혼란스러웠다. 부모를 만나는데 열을 재고 소독약을 뿌리다니...
나 같은 자식이 있을까 싶고, 모두를 위한 일이라지만 혹시나 내 목숨 부지하자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보일까 싶고...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틀 전 토요일, 엄마 아빠를 만나 남편과 나, 아이 둘의 열을 재고 엄마 아빠의 열도 쟀다. 모두 정상이었다.
"휴, 마스크 다 벗어"
마스크 벗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엄마의 살림 이야기도 들어드렸다.
그리고 엄마 부엌에서 느껴지는 짠내를 맡았다. 오이 장아찌의 짠내를.
찝찝하고 싫었던 오이 장아찌의 짠내가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이 장아찌를 보며, 엄마는 그럭저럭 잘 살고 계셨음을 예측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정리를 했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서는데 엄마는 꽁꽁 얼린 박대라는 생선과 고등어, 조기를 보자기에 싸주고 열무김치 한 통, 김장 김치 한 통, 고춧가루, 오이 장아찌, 참기름, 들기름, 앙구매론, 사과, 심지어 라면과 과자까지 싸주었다. 조금 과한 것 같아 덜어내고 싶었지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하나라도 놓고 오면 안 될 것 같아 꾸역꾸역 차에 쌓았다.
차 안 가득 싸 온 음식들을 집까지 옮기느라 몇 번을 움직였지만 힘들지 않았다. 냉장고 가득 찬, 엄마의 짠내가 한동안 우리의 식탁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기 때문이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추석 때 올게."
하니,
"다음 주에 또 와"
한다.
정말 다시 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무심한 듯 던지는 말속에 '마음'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세월이 드러나는 부모님의 모습에, '어쩌면 훗날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구나'싶다. 엄마의 부엌에서 맡았던 짠내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그 날이...
7월 20일. 지역 확진자 4명이라는 뉴스를 보며 어쩌면 예전처럼 다시 가고 싶을 때마다 가고, 만나고 싶을 때마다 만나며 살 수 있는 날이 올 수 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오늘도 오이 장아찌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밥이 달다.
식욕은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의 증거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