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내로 70%, 나 30%의 삶
아이를 키우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과거 아빠 세대는 집안일을 도맡는 아내를 '집사람'이라 불렀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당연시되던 표현이었죠. 여성은 집에 머물며 아이들과 가사를 해야 한다는 어감이 배어 있던 그 단어가, 출산 후의 제 삶에 낯선 무게로 나가왔습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집안에 머무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저는, 마치 세상에서 낙오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도태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해했지요.
빨리 일을 재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안이를 아침 7시 30분 어린이집 문이 열리자마자 맡기고 사무실로 출근했죠. 돌이 막 지난 지안이는 하루 대부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며 저보다 선생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지안이가 인형이나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불안감의 표현일 수 있으니 '등원을 조금 늦추거나 하원을 당겨 엄마와의 시간을 늘려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말을 에둘러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뒤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누군 아기 맡기고 싶어 맡기나?'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하신 선생님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이윽고 제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계속 일을 늘리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지만 일을 줄이는 건 곧 저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그간 제게는 낯선 단어,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나를 조금 뒤로하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경험은 제게 처음이었고, 솔직히 온몸으로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5년 뒤, 10년 뒤의 나는
어떤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 끝에, 저는 아이와의 시간을 늘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무실을 정리하고 재택근무로 전환했으며, 업무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대신 집안일은 제가 맡아 남편이 퇴근 후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했죠.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어질러진 공간을 정리하며 살림살이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이들이 가치 없는 노동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집이 정돈될수록 기분이 나아졌고, 가족들도 평안해 보였습니다. '내 작은 선택의 변화가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구나.' 깨달으면서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죠.
지금 제 삶은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이 70%, 그리고 제 자신을 위한 시간이 30%로 나뉩니다. 과거에는 이 비율이 억울하고 불공평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아이가 안정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남편이 저녁 식사 후 육아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을 느낍니다.
여전히 하루는 빠듯하지만, 그 속에서 저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좌절과 마주하며 삶을 되돌아본 덕분에, 저는 조금 더 나은 엄마, 아내, 그리고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나를 잃는 것 같았던 시간 속에서도, 저는 다른 방식으로 제 삶을 채워나갔습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작은 행복을 발견할 때도, 일을 내려놓는 선택에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일 때도 있었습니다.
삶은 늘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가 후회 없는 선택을 고민하며 살아간다면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지금의 최선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나는 시간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