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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4살 딸이 건넨 위로

by 린지



“엄마,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온 사방에 깨가 흩뿌려졌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깨만 뿌리면 끝이었는데, 이럴 수가!

뚜껑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집에 깨가 넘친다~” 너스레를 떨며 웃어 보였다.

혼나기 싫어서 먼저 농담부터 던졌는데.


바로 그때, 딸이 변호사처럼 등장해 나를 위로했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지안이에게 수도 없이 해왔던 말을, 이제는 내가 듣고 있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더니 정말이었다!




감동이 잦아들자 이성이 돌아왔다. 이윽고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들..


끝끝내 말을 듣지 않고 욕심껏 따른 우유를 식탁과 바닥에 흘렸을 때, 물감 놀이를 하다 나무 바닥을 온통 물들였을 때, 새로 산 장난감을 개봉하자마자 고장 냈을 때, 가위질을 하다 새로 산 내복을 싹둑 잘라버렸을 때..


꾹 참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감정 기복이 크고, 화도 많은 엄마다.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라는 문장은 솔직히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말은 아니다. 그래도 남편을 따라 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해왔다. 그게 더 좋은 반응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특히, 애지중지 쓰던 아이폰을 케이스에서 굳이 빼다가 결국 깨트렸을 때는 화를 낼 뻔했는데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괜찮아, 다음부터 조심하자. “라고 말하며 멋진 엄마의 모습을 연기했다. 어차피 화를 낸다고 핸드폰이 다시 붙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바로 이번에, 그렇게 뿌린 대로 거두었다. 이 맛에 참는 거 아니겠어?


이렇게 까지 노력하는 이유는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가 아끼는 김치를 냉장고에서 꺼내다 흘린 적이 있었다. 허구한 날 혼나는 게 일상이었으니, 이번에도 분명 한 소리 듣겠구나 싶어 잔뜩 쫄아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혼내지 않으셨고 내가 쏟은 김치를 치우셨다. 너무 이상했다. 이 타이밍에서는 무조건 한 소리가 나와야 자연스러워 때문이다! 그 순간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실수를 했을 때, 당연히 혼나겠지 하고 긴장했던 순간.

그런데 예상과 달리 혼나지 않았을 때. 그때 느껴지는 안도감과 위로. 참 우습게도 그 안에서 사랑을 느꼈다.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었는데

나도 우리 엄마처럼 멋진 엄마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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