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회피형인 나는 영어를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과 수업 빼고 동아리 활동, 알바, 대외활동까지. 영어 빼고 뭐든 에이스였다. 2학년 2학기, 그리고 3학년이 되면 학부 과정은 점점 심화가 되어간다. 영어 통번역학부는 4가지 중 세부전공을 선택해서 더 깊이 공부를 하는데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더이상은 안 되겠다. 뭣이 중헌디.. 나는 지금 알맹이 없는 껍데기다. 이대로는 아니다 싶어 내가 가진 찬스를 쓰기로 했다. 이번학기 끝나면 휴학이다. 부모님께는 휴.. 휴학이라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따가운 눈초리가 날아왔다.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라 이런 사정을 부모님께 알릴 수 없었다. 부모님이 안다고 해도 결국 학교에 어떻게 적응하고 진로를 찾아갈 것인지는 내가 해나가야 할 몫이다. 흠.. 어떤 여정이 될 지는 모르겠다. 일단 숨막히는 학교에서 나를 구출해내야겠단 생각 뿐이었다.
영어만 아니면 된다. 대학교 1~2학년 당시 나는 브라질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브라질 사람들과 같이 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포르투갈어를 배울 수 있었다. 1, 2 , 3, 4부터 고기 이름, 간단한 회화 표현들을 배웠다. 어찌나 재밌던지. 영어 때려치고 포르투갈어를 해야겠다 해서 이중전공으로 브라질학과를 신청했다. 영어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선택할 작정이었다. 영어 빼고 다 괜찮았다. 듣도 보도 못한 라틴어를 배우고, 브라질 역사를 배우면서 빙글빙글 안드로메다로 가는 줄 알았다. 라틴어는 동사 기본 시제를 6개씩 외워야해서 밤새 노트에 써가며 암기를 했다. 그래도 영어보다 나았다. 영어 빼고 다! 그게 뭐든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대로는 안되겠다. 학교는 나에게 감옥과 다름이 없다. 그 곳에서 매일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졸업을 한다해도 의미가 있을까.. 나는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멍청이인데..
“휴학하면 뭐할꺼야?” 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날아들던 때, 내가 생각한 ‘휴학기간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은 바로 ‘해외 유학‘이다. “해외 유학을 다녀와야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 라고 생각했다. 2학년 1학기가 끝난 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1년 휴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유학 계획이자 도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캐나다 유학 컨설팅 회사에 방문했다. 캐나다에 있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학교별 위치와 학비도 알아보았다. 리플랫 몇 장을 받아와서 어떤 곳이 좋을지 상상을 했다. 그리고 결정한 곳은 벤쿠버 아일랜드, 빅토리아 섬이다. 캐나다인들이 노년에 퇴직 후 살고싶어하는 작고 평화로운 섬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지역들보다 한국인이 가장 적다고 해서 선택했다. 가장 크게 학비와 홈스테이, 비행기값이 들어간다. 비행기 400만원, 홈스테이 400만원, 학비 300 총 1,100만원정도가 필요하다. 내 도피계획을 실행하기까지는 대략 1년정도가 걸렸다. 사실 휴학도 처음이 무섭지 한번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8개월 돈 모으기 - 6개월 어학연수 - 1개월 자유여행까지. 뭔지 모르지만 제대로 마음 먹었다. 이제 아무도 나를 말리지못한다.
꽁꽁 묶어둔 내 입을 캐나다에 가기 전 조금이라도 풀어놓고 싶었다. 캐나다에 가서도 이렇게 바보같이 있을 수는 없다. 8개월동안 조금이라도 영어로 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마침 인천국제공항에서 하는 단기근무 일이 올라왔길래 바로 지원하고 면접을 보았다. 1층 8번 게이트, 정 중앙에 있는 센터 부스에서 안내를 하는 일이었다. 교대근무이고 유니폼도 있었다. 무엇보다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이다. 절호의 기회였다. 8개월동안 했던 일은 인천공항 1층 내 안내데스크였다. 당시 인천공항 1층 중간즈음에 홍보부스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안내하고 응대할 사람을 뽑았다. 출근하면 아침부터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 곳에 들러서 물어봤다.
“Where is the elevater?”
“Where is the bathroom?”
“Where is the food court?”
유니폼을 입고서 고객을 응대하며 속으로 식은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모른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