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나는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발음을 굴리는게 좋아서 영어 단어를 말하고 다녔다. A, B, C가 모여서 새로운 소리를 내는 단어가 되다니, 지나가다 간판이 있으면 더듬더듬 하나씩 읽었다. 글자를 읽기 시작하고 영어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면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 말하기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반 게시판에 영어 말하기 대회 공고가 붙었고, 2명씩 짝지어 팀으로 나갈 수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1등을 하면 인천시 영어 말하기 대회에도 나간다고 한다. 저 공고가 뭐라고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주제는 Incheon, Family, Summer vacation 등등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나간다니 일단 바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3분 스피치를 위해 스크립트를 쓰고 외웠다.
Yeah! It’s summer vacation!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리 둘이 스피치를 시작했다.
단상 위에 올라가는 건 항상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한다. 버벅버벅 안 외워지는 구간도 있었지만 친구와 연습하는 내내 신이 나서 날아다닐 듯 했다. 스피치는 기세가 중요하다. 쩌렁쩌렁한 우리의 목소리는 심사위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신기하게도 우리 학교에서 2등으로 선발이 되어 시청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첫 말하기대회는 정말정말 떨렸다. 그런데 시청 말하기 대회는 더 더 더 많이 떨렸다. 내 스피치 파트너 친구와, 담임 선생님과 함께 말하기대회 예선을 위해 다른 학교 체육관에 방문했다. 순서대로 기다리면서 앉아있는데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각 학교에서 선발된 아이들은 예선전에서부터 남달랐다. 또르르르 굴러가는 발음들에 속으로 ‘와, 진짜 영어 잘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발에 땀이 계속 났다.
우리는 어찌 저찌 예선을 통과했다. 본선은 인천 문화회관 강당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와! 멋지다 주희야! 화이팅이야!! 라고 하는데..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왠지 내 스크립트 내용은 너무 뻔한 거 같고, 다른 친구들 발음이 너무 좋은 거 같다.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스피치를 자신있게 펼칠 수 없었다. 기세가 꺾였고..쩌렁쩌렁하던 목소리는 쪼그라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무대에 섰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내 표정은 내내 굳어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가 싫었다. 남들과의 비교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