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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Feb 15. 2019

네가 타향살이를 하고 있거든

사냥에 실패한 동물을 보는 마음으로


 바깥에 나와 있으면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해외를 쏘다니던 때에는 그 통념이 보통 말로 전달되는 것보다 더욱 힘이 붙어서 실천까지 하는 어른이 많았다. 낯선 사람이라도 그저 같은 말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얻어먹는 역할이 많았다.


 난 몇 번이나 거듭되는 배역을 맡으면서 나이 든 사람, 특히 중년의 여성이 먹을 것을 베푸는데 거리낌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숫기가 없어 아주머니들에게 베풂 당하는 것이 익숙해지기 전에는 뭐라도 되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러나 하다못해 작은 사례라도 들고 가면 한사코 거부하는 통에, 실랑이를 벌이고 무안해지기 일쑤였다.


 가끔은 아주 긴 더부살이를 할 때도 있다.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관성 탓으로 여행을 나와서까지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하는 어미는 쓸쓸하다.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얹혀있던 자리가 허전해 아무나 채워 넣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중년은 숟가락만 더 놓으면 된다며 자리에 날 앉혀두고, 마치 늘 사냥에 실패하는 동물을 대하는 모습으로 나를 안쓰러워했다.



그래, 학생은 어디서 왔어?


 야들야들 익는 돼지고기는 구릿빛이 되기까지 얼마나 찬란한가. 삼겹살을 앞에 두고 의례적인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여행 중 자랑스럽지 못한 일이라도 있으면 안타까움에 혀를 쯧쯧 차고, 기쁜 일이라면 끌끌 웃어주는 것이다. 종종 오는 스팸메일에서는 개인 정보를 적으면 경품을 준다는데, 넙죽넙죽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그 메일이 떠올라선 떨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긴 여정 중 오래도록 먹지 못한 삼겹살이면 그깟 정보야 기꺼이 바치리라. 티브이 드라마를 보지 못한 것이 이유라면 더 그럴듯한 이야기라도 꾸며서.





 나는 날 때부터 비위가 좋지 않았다. 도시락 같은 것을 일절 먹지 못하였는데 도시락통에 찬 물방울이나, 통 안 가득 찬 음식 냄새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면 머리가 어질어질 구역질을 쉼 없이 하고 말았다. 이런 까탈스러운 입맛으로 인해 음식의 향이 덜한 유부초밥 따위를 먹어야 했는데,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꼬박 챙겨줘서 다른 집 아이들은 내가 잘 사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함께 도시락이라도 펼치면 난 저 멀리 떨어져 먹어야만 했다. 냄새만으로 토악질을 하는 수준이라 내 딴에 배려를 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눈엔 좋은 도시락을 치사하게 혼자 먹는 녀석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바로 만든 요리를 먹는 것 이외에, 어떤 저장용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냉장고는 재료를 보관하는 용도에 그쳐서 결코 남은 음식을 품는 일이 없다. 식사 초대도 마찬가지다. 주선자가 어떤 요리를 할 것인지 은근히 물어본 뒤, 한식이라면 미리 거부를 하고 만다. 고기를 굽는다고 하면 그걸로 다른 냄새를 전부 덮을 수 있으니 괜찮지만 저장된 음식의 냄새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그리하여 살지 않던 곳에서 살다 보면 여러 사람의 도움이 때로 두렵다. 이타적인 이웃들은 먹을 것에 인심을 부릴 적이 제법 있다. 그중 가장 많은 호의를 감춘 음식이 단연코 김치. 큼지막한 용기에 담긴 절절한 인심이야 감사하지만 내가 결코 먹지 않을 음식. 거절의 수순을 밟고 나면 여느 어른의 입에서 꼭 나오는 말을 옮겨 본다. “한국인이라면 김치를 먹어야지.” 어르신, 그럼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 봅니다.





 친구 하나가 당분간 이곳을 떠나 있을 셈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나는 당장에 만나서 밥을 먹자고 했다. 더 잘 먹었으면 먹었지, 나보다 못 먹고 다니지 않았을 친구를 꾀어 고기라도 굽자며 매달렸다. 밥 역시 내가 사겠으니 군말 말고 먹고 싶은 것이나 떠올리라 했다.


 동네에서 만날 친구 몇 없는 내가 많이 믿고 의지하는 아이였다. 같은 날 함께 이 먼 섬에 떨어져 고생도 겪고, 종종 만나 하소연을 줄줄 늘어놓기도 했다. 우린 늘 서로의 끼니를 챙겼다. 안부라도 물으면 말미에 꼭 밥 잘 먹고 다니라며 호령 섞인 당부를 했다. 타향이 힘들어져 떠나는지, 고향이 그리워져 떠나는지 나는 모른다. 묻지도 않을 셈이다. 그러나 영영 못 보는 것 아닌데도 반드시 그에게 끼니를 치러주고 싶었다. 값이 얼마나 나가든, 내 벌이가 형편없든 간에 함께 상에 앉아 음식을 씹어야 성이 풀릴 참이다.


 내 말에 꼭 그러겠노라 웃으며 말하는 그와 약속을 잡고서 내가 타향에 나와 있는 건지, 그가 타향에 가는 건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저 먼 벌판으로 나가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여태 받았던 수많은 끼니가 한꺼번에 떠올라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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