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일은 해야죠.
약을 받아왔다. 여행하다 물린 진드기 자국이 이직 낫질 않아서 그렇다. 그 때문에 한 철 꼬박 고생이다. 아무렴 이런 간지러움이야 여행의 증명 같은 일이라 한들, 진물이 날 정도로 가려운 건 너무한 것 아니냐 싶었다. 나는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에 가길 좋아한다. 아픈 것은 일부러 할 수 없고 꾀병을 부리기에는 돈도 드는 일이니,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 또한 병원이다. 몸에 좋은지는 잘 모르지만 소독하는 데 쓰이는 알코올 냄새를 한껏 마시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병원에서는 늘 재미없는 채널을 골라 틀어준다.
이름이 불리어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면 의사는 요모조모 날 뜯어볼 법도 한데, 대개 의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뻔한 병을 가지고 온 환자에게 관심이 잘 없다. 진료라는 것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늘 부족한 듯 끝나버리는 게 기본이다. 그래서 아무리 싸다고 해도 진료비가 아쉽다. 의사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은 날 쓱 훑어보고 그럴듯한 병을 지어내는 사람처럼 말한 뒤 처방전을 써주곤 돌아가라 하는 것이다. 저렇게 재미없는 표정이라니. 나는 배운 게 많고 벌이가 좋아도 의사는 못될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하여 더 아플 심산이 생기길 바라진 않지만 괜히 별것 아닌 병에 힘을 쓴 기분이 들어 섭섭하게 돌아 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이름이 불린다. 빠른 일처리에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때가 많아 걸음을 보챈다. 삼분 정도 나눈 대화가 삼천오백 원이라고 원무과의 여자가 자꾸만 채근하는 것이다.
부산에 사는 형과는 몇 해 만에 만났다. 그는 자신이 바뀐 점에 대하여, 특히 새로 산 물건을 줄줄 늘어놓았다. 담배를 피우는 형은 최근 전자담배로 바꾸었다며 자랑한다. 담배를 불로 태우는 것보다 냄새가 덜 하다며 주변 사람들이 냄새로 무어라 하는 통에 귀찮았던 일들이 없어지니 참으로 좋다 했다. 기계 값은 조금 비싸지만 그 후에는 좋은 점이 많다고 저 혼자 뿌듯해하는 것이다. 한편 나이가 드니 몸이 자꾸 곯아서 요즘은 홍삼을 먹어 기운을 챙긴다고 했다. 홍삼은 뭐니 뭐니 해도 진안이 으뜸인데 숙부가 그쪽에 있어 잘 구해 먹는다는 게 아닌가. 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동시에 자랑하니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몸에 좋다는 것 다 챙겨 먹으면 뭐 해요, 담배를 좀 끊지.”라 했다. 형은 그 말이 맞다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약 성분표를 자세히 보아하니 잠이 올 수도 있다고 적혀있다. 그래서 약사 선생님은 약을 내어주며 가급적 운전은 피하라고 말을 곁들였다. “졸리니까 운전을 하시면 위험합니다.” 졸린데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은 어쩌겠어요, 적당히 해야죠.” 병 치료하는 사람들은 환자를 죄다 한가하고 할 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길 잘도 한다. 그래서 평일 낮에 치료받으러 오라는 말을 쉽게 뱉기도 하고. “네, 알겠습니다.” 다시 갈 마음이 들지 않아도 대답을 넙죽넙죽 하는 게 정말 환자임에 분명하다.
요즘은 일찍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끝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약을 챙겨 먹는다. 간지러움에는 효과가 대단하지만 마찬가지로 부작용 역시 힘이 세서 자주 졸음이 온다. 하품을 쩍쩍하며 일을 하다가 커피를 내려 마신다. 향이 좋고 맛 또한 좋다. 치료 약의 졸음과 커피의 또렷함이 싸우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잠깐 생각하기도 한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다 강남 번화가에 있는 카페 중 점심시간에 잠깐 숙면을 도와주는 곳이 있다는 말을 했다. 짧은 점심시간을 쪼개 낮잠을 자게 해주는 곳인데, 제법 인기가 많다고 한다.
왜 그런답니까 바보들처럼. 그냥 조금 덜 벌고, 더 쉬면 되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겸하는 일은 현대인의 고질병인가. 과하게 먹어 살을 찌워 두고는 헬스장에 가서 도로 살 빼기에 몰두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을 자기 관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 범주에서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는, 물린 데가 간지러워 벅벅 긁고 커피를 마시며 약 기운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여느 바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