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필 하세요!"
선생님은 세 번째로 만나는 시인이었습니다. 신경림 시인 앞에서는 <나목>을 낭독하였고 박준 시인의 강연은 맨 앞자리에서 들었습니다. 김소연 시인을 만날 수 있던 건 시 창작의 시간에서였습니다. 이미 하루는 늦어버렸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쳤구나!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은 하루를 빼고도 저의 보름치 생활비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숱하게 듣긴 들었는데. 제가 잠깐 글을 쓰던 잡지의 편집부와 함께 다니는 무리로도 많이 보아왔는데. 주변에 문학하는 친구들로부터 줄곧 추천을 받기도 했는데. 정작 저는 시인을 잘 모르겠더군요. 연락을 주고받다 잠깐 멈춰 고민하는 그 시간을 들킬까 봐 어서 빨리 선택해야 했습니다.
문학을 위한 야간 수업은 어쩐지, 공장에 다니며 야학을 하던 옛 청년들의 분위기 같았습니다. 얼마의 피로와 그럼에도 불타는 눈, 서로의 글을 읽으며 건네는 섬세하고 예리한 조언. 그건 대단한 기술자들의 집단을 목도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말을 섣불리 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 이틀부터는 입을 닫아버려야 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시인 놀이를 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대단한 시인들과 견주어 보며 서로의 높낮이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입니다. 서로 모르는 척하면서 담배를 피워야 했습니다. 저는 덕분에 열 개비, 열다섯 개비쯤 동냥당했습니다. 담배라는 건 한숨을 숨기면서 뱉기에 아주 좋았거든요. 그깟 것이야 뺏기면 어떠랴 하여 아낌없이 건네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학생들은 더욱더 날카롭고 예리하게 서로를 짚어냈지요.
‘시인’을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하다 보면 ‘신’이라 읽힐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탐구하며 언어의 정수를 골라 모아 쓰는 글은, 하마터면 정말 신이 될 뻔한 사람들처럼 마음을 관통합니다. 그런 적당함을 만드는 법에 대하여 말해주는 시인은 아주 고집불통의 제자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원래 말하려던 글의 중심을 덜어내라니요. 가혹한 방침에 갖고 있던 정서가 전부 깨져 버렸습니다. 저는 배움을 하러 온 것이니 응당 고개를 끄덕여야 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쉽게 납득해주지 않았습니다. “나이답지 않습니다”, “느닷없습니다”, “감정이 너무 드러났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잽을 맞다가 “통째로 빼세요”라니, 스트레이트를 정통으로 맞은 셈이지요.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완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쉬운 예술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돌아가며 소개를 하는 시간과, 끝난 후 감상을 말하는 시간에서 어쩌다 보니 어영부영 둘 모두를 건너뛰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의 소개에서 부연 설명이 붙다 보니 지나가버렸고 감상은 다들 마음이 먼저 떠버린 탓에 챙겨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나 봅니다.
열두 시쯤, 수강생 몇 명이 먼저 돌아가며 마무리되려던 마지막 수업의 뒤풀이는 뒤늦게 토로되는 아쉬움으로 연장되었습니다. 어떤 잔치도 아니었건만 우리는 함께 국수를 먹으러 갔습니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각자 한 그릇씩 잡은 국수와 수육을 놓고 우리는 오래 떠들었습니다. 주인 할머니가 문이 곧 닫힐 것이라 말해주기 전까지 술을 양껏 마셨습니다. 시인은 값을 지불하고, 담배를 태우셨고, 모두를 마중하였습니다. 이미 새벽 세 시입니다.
시인은 시에서만큼은 솔직하라 하였고, 타성에 젖지 말라 했고, 글감과 기술이 충분하니 시를 너무 어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단둘이 담배를 태우는 시간마다 전해준 말 몇 개로 제가 시를 쉽게 쓸 수 있다면, 저는 정말 시인일까요. 시인 놀이를 정말 잘하게 된 배우는 아닐까요.
“건필 하세요!”
같이 수업한 다른 학생 한 분이 외쳤습니다.
헤어지며 받은 그 말에 난 아직도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