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Mar 08. 2019

노량진 랩소디

"여기 살던 사람 잘 되어 나갔어"


 노량진에서 지내는 친구 용이의 월세방 보증금을 들었을 때, 나는 펄쩍 놀라 뛰었다. 그렇게 뛰는 것만으로 바닥이 크게 울리는 방이기 때문이었다. 방은 매우 비좁아서 둘이 지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건 비싼 월세를 다른 친구와 나눠낼 수도 없다는 말이었다. 가끔 나처럼 뜨내기인 녀석 하나 정도야 바닥에 이불 펴 재워줄 수 있을 뿐이라 온전히 홀로 자신을 가두기에 적합했다. 용이는 자신의 방을 노량진에 걸맞은 방이라 했다.


 원룸도 고시원과 같아서 방에 창문이 달리면 값은 올라갔는데, 용이가 방을 구할 때 마침 작디작은 옥상이 딸린 건물 끝방이 나온 것은 천운이라 했다. 노량진에서 방을 보여주는 중개인들의 입버릇은 "여기 살던 사람 잘 되어 나갔어"였고, 용이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서울 중 종로 다음으로 노량진을 좋아했기에 용이의 집에 자주 식객질을 했다. 그것도 기껏해야 일 년에 서너 번이었지만 용이가 시험 전으로 바쁠 적에는 거절당한 적도 많았으니, 노량진으로 가려고 했던 날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내가 왜 노량진을 좋아했느냐 물으면 단연코 값싼 식당이 즐비한 탓이라 했겠지만, 성공가도를 달릴 사람의 소싯적을 볼 수도 있는 것이라 그 땅의 분위기를 즐겼다. 물론 한 뼘 떨어져 관망하는 사람의 여유였을지언정. 용이는 갈 때마다 핼쑥해지거나, 살이 오르거나 한 모습으로 달라져 있었다.


 용이와 만나면 늘 지하상가 식당으로 간다. 찌개와 제육이 저렴하고, 하나만 시키더라도 밥이며 간단한 반찬 여럿을 계속 채워주기 때문이었다. 그건 허기가 존재할 틈 없이 수험생들의 배에 연료를 붓는 느낌이었다. 식당에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잔뜩 있어서 합석도 잦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물었다.


"저런 곳은 저러다 덥석 눈도 맞고 하지 않냐."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찌개가 반쯤 남았을 때 용이는, "그런 시간이 있는 애들도 있겠지"라고 했다. 우리는 고기와 밥을 처음처럼 가져다 먹었다.





 아주 큰 시험을 앞둔 용이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용이의 집에 티셔츠 하나를 두고 온 것을 핑계로 찾아가 볼 속셈이었는데, 꽤 오랜 시간 답이 없는 바람에 계절이 바뀐 다음에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여름 티는 겨울에야 찾을 수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득그득 담아 주는 컵밥을 먹고 싶었고 용이는 도저히 질려서 먹을 수 없으니 오늘만큼은 고기를 굽자 했다. 얼굴에 힘든 기색이 엿보여 용이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해를 넘기기 전 마지막 시험이라고 했다. 그래서 올해가 넘어가면 또 방을 계약해야 할 것이고, 용이는 그것이 죽도록 싫다고 했다. 여태 준비한 시험은 선생님이 되는 임용시험이었는데, 영 자신이 없어 그 사이 공무원 시험을 조금씩 챙겨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독이 되었는지 정작 중요한 임용시험을 망친 것 같다며 좌절했다.


 용이가 여자 친구랑 헤어진 것은 바로 같은 날이었다. 마음은 괜찮으냐 물었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시험이 문제라 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게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니냐 다시 물었는데, 이별은 노량진 수험생에게 자존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이라며 시험에 실패한 변명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했다. 서로에게 괜찮은 거래로 자주 이루어지는 연애사인 듯 그는 무덤덤했다.


 난 그런 관계에 대하여, 성사되고 끝나는 방식에 대하여 결코 납득할 수 없었지만 노량진의 수험생이 되어본 적도 없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용이의 표정은 아무도 잡히지 않을 덫을 놓고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내 기분은 착잡했지만 난 용이의 연애가 변명으로 쓰이지 않길 바랐기에 그가 합격 소식을 들었으면 했다. 그리하여 다시 방을 세놓는 아주머니가 이 방에 지내던 청년은 아주 잘 되어 나갔다고, 다음 세입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빌미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생각했다. 가끔 오갈 곳 없는 친구 하나가 머무를 때는 빨래 건조대 아래에 머리를 집어넣고 자기도 했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용이는 재계약을 했다고, 소식은 다른 친구에게 건너 건너 들었다. 같은 방인지 묻지 않았고 결과를 묻지도 않았다. 그저 그 월세방의 보증금이 터무니없게 오르지 않았으면 좋을 것이라 여기고 더는 생각을 않았다.


이전 08화 제가 감히 시인 놀이를 하고 있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