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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이해 Dec 30. 2015

<큰발 중국 아가씨> 이야기

<멋진여자가 되려면> 쉬어가기

<큰발 중국 아가씨> 이야기

"자~ 학생 여러분들 모두 지금 나누어준 교과 과정을 받았나요?"


(모두들) 네!

이번 학기에는 총 2권의 책을 영어로 읽을 건데 책의 제목은 바로 나누어준 그 교과 과정에 쓰여 있어요.


한 학기 동안 총 6번의 시험을 보는데 각 1 권당 3개의 시험들로 이루어져 있고, 매 수업마다 수업 시간에 나누어준 퀴즈들을 수업 시작 전에 제출해야 해요.


수업 시간에 3번 늦으면 한번 결석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수업 시작 전에 제출해야 하는 퀴즈들은 수업 시작 후 5분 이후에는 받지 않습니다. 힘들겠지만 모두 열심히 잘 해봅시다!


패터슨 교수님의 영어 읽기 수업 설명이 끝난 후부터 다른 학생들을 비롯해 나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윽... 6개의 시험이라니...!'


A를 받으려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6개의 시험도 수업 시간마다 제출해야 하는 퀴즈들도 모두 잘 해내야 할 텐데 한 학기 동안 쉽지는 않겠군! 그렇지만 다행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패터슨 교수님 이니까 잘 견딜 수 있겠지?


교과 과정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두 개의 책이 나열되어 있었다.



 <Man's search for meaning> by Viktor E. frankl (한글 번역명: 죽음의 수용소에서 | 저자: 빅터 프랭클)



<Ties That Bind, Ties That Break> by Lensey Namioka (한글 번역명: 큰발 중국 아가씨 | 저자: 렌세이 나미오카)


수업을 받는 한 학기 동안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지옥 같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3년이라는 세월을 꿋꿋이 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심리적인 이야기들로 뒤덮인 어려운 책이라서 나는 그 책이 부드럽게 읽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책인 <큰발 중국 아가씨>는 조금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한 학기가 꽤 힘들었지만 무사히 지났고 오랫동안 나는 이 책에 대해 잊고 지냈다.


책이라는 것은 언제든 읽어두면 좋은 것인가? 한 7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이 책이 문득 떠올랐다.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그쯔음 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느꼈던 회의감과 한국이 가진 특유한 유교 사상과 결혼의 악습이 내 눈에 더욱 도드라져 보일 때 즈음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의 유교사상

나 자신이 내린 한국의 유교사상의 정의는 이렇다.

악습(惡習)


회사에서 스포츠 행사를 한다고 했다.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을 이기고도 손 윗사람들에게 양보를 한다.


가위 바위 보!

아이구~ 자네가 이겼구만!


아... 아니오. 괜찮습니다.

먼저 하시죠.


게임이 시작되었다. 토너먼트로 2명씩 게임을 하게 되는데 어쩌다 나이가 많으신 분과 대결하게 될 때 하필 이면 어린 동료가 우연찮게 상사를 이기고 있을 때 뒤에 서 계시는 나이가 지긋이 있으신 임원 분들에게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자~ 적당히 하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도 알고 있고 업무를 보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때로는 업무 위에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어른들에게 눈치껏 이겨주기 위한 스포츠 행사는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이기고도 양보해야 하면 그냥 처음부터 나이 순서대로 하겠다고 했다면 받아들이기 더욱 편할 텐데 말이다.


게임의 예를 들었지만 정말이지 윗 분들의 기분도 맞춰드려야 하고 그분들과의 게임은 이겨서는 안되며 우리 한국 사회 모두가 유교사상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모두 다 알고는 있지만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분명하고 불편한 진실이 한국에는 어디든 늘 있다.


어떤 날은 모든 팀원들이 무료한 업무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사다리를 타기로 했다. 사다리 게임에는 500원, 1000원, 2000원, 3000원 그리 크지 않은 금액으로 나열을 했고 거기에는 재미로 심부름 혹은 0원 당첨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끼리만 모여있는 사무실이라면 누가 되든 한바탕 웃으며 자신에게 정해진 사다리대로 돈을 내거나, 0원 당첨을 받아 기뻐하거나 음식을 사 오는 심부름을 하는 것이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한국 사무실에서는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행여나 어르신들이 심부름에 걸릴 때에는 모든 직원들이 난감해했고 눈치를 보고 있는 젊은 직원에게 대신 가 줄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 어느 한 어르신들도 자신이 직접 가겠노라고 말씀하신 일을 본 일이 없다. 그 이후로는 서로서로 민망하지 않도록 사다리를 탈 때 심부름을 빼버리고 나와 다른 직원이 자진해서 그냥 사 오게 되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


라는 축 늘어진 유교사상의 심보를 가진 어른들은 진짜로 멋이 없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느낀 점은 악습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 멋진 중국 여자아이 '아이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중국의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오랜 풍습으로 전족을 해왔다. 오랜 관습이 풍습으로 자리 잡은 이 전족의 기원은 중국 남당(南唐)의 마지막 왕때 부터 시작이 되었다. 왕인 이욱(李煜)은 무희들이 금제 연꽃반 위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연꽃반이 너무 작아서 무녀들이 하얀 천으로 감싼 발을 발레리나처럼 세운 후 그 위에서 춤을 추었던 것이 훗날 점차 상류사회에 유행하고 민간의 여자들이 서서히 이를 따라 하여 관습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라 한다. 사실 전족을 유행시키게 된 또 다른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송나라 때 전족은 주로 상류 부인들에게서 볼 수 있었고 전족의 르네상스를 맞은 것은 명나라 때에 이르러서다. 명나라 때 궁의 여자들은 반드시 전족을 해야만 했는데 이것이 곧 귀족 부인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때 당시의 전족은 상류 사회 여자들의 신분과 계급을 상징할 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 명시대에는 전족이 더욱 작아졌다. 게다가 모양도 요사스럽게 변해서 도저히 사람의 발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전족을 시작하는 나이는 보통 생후 4, 5세부터 이고 이때부터 발을 묶기 시작해서 3~4년 정도에 걸쳐 발을 압박해 나가면 8세쯤 대략적인 발의 모양이 나오는데 염증이 생길 때에는 명반 같은 약재를 넣어서 염증을 막는다. 이렇게 하여 시간이 지나게 되면 뼈의 기형이 일어나고 발이 안으로 접히게 되는데 그 사이 뼈도 부러지고 그 모양은 발가락이 바닥에 붙어 사이에는 공간이 생기고 발등은 위로 돌출이 되어 전체적인 발 길이가 짧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후천적으로 여성의 발을 만들면서 중국 사람들이 중국 여성들에게 기대했던 것은 여성의 인내, 정숙, 가정교육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담하게 잘 만들어진 전족은 여성의 순종과 엄한 가정교육을 보증해 주는 보증 수표의 역할이었다.

 

이 책 <큰발 중국 아가씨>에도 어릴  때부터 혼처를 정하는 풍습이 있었던 중국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인공 아이린이 전족을 피해갈 수 없는 나이 5살이 되었을 때 아이린이 속한 타오 가문에 리우 부인에게서 혼처가 들어왔고 아이린이 아직 전족을 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리우 부인은 할머니와 아이린의 엄마에게 아이린이 전족을 꼭 해야 함을 설명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아이린의 둘째 언니와 아버지는 아이린이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큰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엄마와 할머니가 전족을 해야 함을 아이린에게 재촉할 때 막내인 아이린은 둘째 언니의 발이 얼마나 아픈지 궁금했다. 둘째 언니는 아이린을 끌어안고 아이린의 뺨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자들은 모두 이런 시련을 겪어 왔단다.
어머니도, 할머니도, 큰 언니도, 리우 부인
네 보모도 모두 다 말이야.

여자로 사는 건 힘들고 고단한 거란다."


"그렇지만 언니!

여자라고 다들 전족을 하는 건 아니야!

내 유모는 발이 남자 발 같았는걸!

뒤뚱거리며 다니지도 않았어!"


둘째 언니는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내가 발을 씻을 때, 내 방으로 와.

그럼 내가 발을 어떻게 이 작은 신발 속에  집어넣는지 보여 줄게."


그날 밤 아이린은 둘째 언니의 방으로 가서 언니가 어떻게 발을 씻는지 보았다. 칭칭 동여 매고 있는 하얀 끈을 풀었고 끈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처럼 길었다.


그리고 아이린은 언니의 발에서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아이린은 깔끔한 언니의 발에서 고린내가 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둘째 언니의 엄지발가락은 형체도 없이 문드러져 있었고 다른 발가락들은 발바닥 밑으로 억지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다리 끝에 달린 살 덩어리를 멍하니 내려다본 아이린은 토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이린은


절대로 엄마가 나에게 이런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테야. 절대로 안돼!


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엄마는 둘째 언니를 당장 불러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말하며 빰을 때렸고 언니는 엄마에게 아이린이 진실을 알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둘째 언니는 엄마에게 계속 매질을 당해야 했지만 어린 아이린을 속여 그 아이 만큼은 전족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어린 아이린은 자신때문에 엄마와 대신 싸워준 둘째 언니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엄마는 이 일 이후 더 이상 아이린에게 전족에 대해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리우 부인은 당연하다는 듯 전족을 하지 않은 아이린이 속한 가문과 정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흘러 둘째 언니는 시집을 갔다. 아이린의 언니들이 결혼을 할 때에는 값비싼 예단이 담긴 함이 줄줄이 신랑 집으로 보내졌다. 그래야 시집에서 언니들의 낯이 섰기 때문이다. 아이린이 전족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아버지가 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지만 병환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성격이 고약한 큰 아버지가 아이린의 집에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다.


큰 아버지는 여자에게 들어가는 돈 즉, 예단과 교육비에 대해 늘 불평을 늘어놓았다. 남자아이는 괜찮지만 여자아이가 학교를 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 아이린의 아버지가 살아 계신 동안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아이린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는 큰아버지는 아이린의 학교에 드는 돈 때문에 아이린이 공부를 더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이린의 꿈은 학교에서 아이린에게 좋은 영향을 준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아버지의 죽음으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될 수 없었다. 큰아버지는 전족을 하지 않은 중국 여자가 될 수 있는 건 오직 세 가지인데 비구니, 농사꾼의 아내 혹은 첩이라고 말했다. 품격 있는 타오 집안의 셋째 딸인 아이린에게 큰아버지는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해왔다.


여러 세대 동안 여자아이들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정한 규칙 때문에 에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하면 했다. 전족을 하지 않은 여자는 상류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린은 셋 중에 어느 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린은 학교에서 영어를 매우 잘 했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아이린의 딱한 사정을 알게된 원어민 교사인 길버슨 선생님이라는 분은 아이린에게 무상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또한 아이린을 돕기 위해 자신의 지인 중 중국인 보모를 구하고 있는 워너 가족을 연결해 주었다. 아이린은 3가지 중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 대신 유모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아이린은 워너 가족과 함께 3년을 사는 동안 아이린은 인력거로 단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집에 가지 않았다.


3년이 지난 후 워너 가족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워너 가족은 아이린도 함께 미국에 갈 것을 제안했다. 아이린은 워너 가족이 그러한 제안을 한 것에 놀랐지만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아이린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엄마를 찾아갔다. 작별 인사 도중 엄마에게서 학교에 가고 없는 남동생 이야기를 들었다.


남동생은 아이린이 미쳐 마치지 못한 공립학교에 다니는데 바로 리우 부인의 아들 한웨이 도령이 다니던 그 학교라고 했다. 한웨이와의 정혼이 무산되고 나서도 어쩌다 한 번씩 한웨이를 본 적도 있었다. 한웨이는 좋은 사람이었고 아마 함께 살기 편한 남편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린은 한웨이와 결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전족을 하지 않은 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삶을 찾게 되었다.


흥미로운 책의 내용을 한 장에  몰아넣어 그 책이 가진 의미까지 모두 다 알리기는 쉽지 않지만 이 책을 읽어본다면 나쁜 관습 혹은 악습에 맞서 혼자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아이린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개척했고 그것에 맞서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나쁜 관습이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심한 것은 유교 사상과 결혼할 때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단과 예물을 주고받는 허례허식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리 와서 이것 좀 가져가지?"

"네!"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직급이 높으신 어르신이 나에게 무언가 가져가라고 부르셨다.


건네받으려고 내민 두 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그 순간,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이 소리.


툭!


손으로 건네받을 수 있는 물건을 책상 위로 던지시는 모습을 보고 가끔 나도 똑같이 행동해 드려야 이 상황이 얼마나 기분이 좋지 않은지 느껴보시도록 그분에게 딱 한 번만이라도 실행해 보고 싶다. 그분이 그만두시기 전에! (과연?!)


나는 유교사상이 우리나라가 더욱 더 발전하는 것을 막는다고 믿고 있다. 원래의 유교사상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본래의 성격이 바뀌어 자리 잡은 것이 한국의 유교사상이다. 중국에서 받아들인 원래의 것과는 다르다.


약자이고 힘이 없는 노인을 공경해드리는 것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유치원에서 모두 배우는 예절과 예의를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손 아랫사람에게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 혹은 어른이기 때문에 배려가 없는 것이 괜찮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등은 결코 멋있는 어른의 생각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드리는 공경의 마음을 감사함으로 받으시지 않고 어느 순간 손 아랫사람을 막 대하는 것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을 대하는 공경과 존경의 모습은 사라지고 불편함만 남는다. 


이것은 새로이 가족을 이룬 남편과 아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장인 혹은 장모가 새로 맞은 사위를 대할 때, 새로 얻게 된 시누이나 도련님 등 혹은 자신의 형제자매 지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모두 적용이 된다. 예의를 지키고 존중과 배려와 존경심을 보이는 것은 결코 한쪽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나 가족에서나 모두 이 사회 안에서 서로 함께 해 주어야 비로소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관습을 가진 사회가 되지 않을까?


공자의 기본 정신은 '시중(時中)사상'이다.
시기와 장소에 맞지 않는 예는
아무리 좋은 것도 틀어지게 되니
시대에 맞춰 따를 것은 따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성균관 전례 연구회 관계자


오래된 관습을 바꾸기란 분명히 쉽지 않고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에겐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대부분의 중국 여자들은 전족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더 이상 전족을 하지 않고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악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옳고 그른것을 알고 바뀌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공자의 가르침과 기본정신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나라인 만큼 중국 여인들이 더 이상 전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에 맞춰 따를것은 따르고
고칠 것은 고치는


좋은 예시인것 같다. 우리도 우리의 악습을 고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삐뚤어진 어른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기 말이다. 어른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생각을 바로 잡을 수는 있다.


나의 소원은 내 얼굴 표정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세월이지나서 나의 얼굴에 주름이 자리를 잡을 때 미소가 번지는 그 자리에 주름이 있는 모습을 가지며 내가 나이가 들은 어느 날 젊은 사람들이 내게 자리를 양보해 주거나, 그들보다 내 자신이 어느 순간 어떠한 상태든 우선순위로 배려를 받고 존중받게 되었을 때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감사함을 잃지 않도록 살고 싶다.


어른이라고 해서 나는 안 한다고 나 대신 젊은 네가 하라고 등 떠밀기 보다는 내가 먼저 모범을 보여주는 영혼의 향기가 아름다운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라고 대접만 받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중해 주고 섬길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다.


좋은 풍습과 그 나라가 가진

고유의 멋을 지키는 것은 옳다

하지만 악습이라면 그에 맞서는 사람들은 멋지다.



*이 글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 입니다. 출판권자로부터 서면에 의한 허락없이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수정일 2020년 5월
 

*아쉽게도 최근 종이책  전자책 출판 계약이 종료되었습니다조만간 다시 편집하여 도서 전문을 업로드해서 많은 분들이 자유롭게 다운로드 받아 읽으실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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