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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이해 Dec 25. 2015

멋진여자는 일을 한다.

<멋진여자가 되려면> Chapter2

2. 멋진 여자는 일을 한다.


(띵동!)


밖에서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한 친한 언니에게서 약속 시간을 몇 분 남겨 놓고 문자가 왔다.


아~ 날씨가 너무 춥다. 그냥 집으로 와서 치킨 시켜 먹을까?

아싸! 치킨이다 ᄏᄏᄏ


그날 따라 유독 치킨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역시 나는 먹을 복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신나는 발걸음으로 언니의 집으로 향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초겨울 강풍으로 어깨는 움츠러 들었고 목은 거북이처럼 줄어들었다. 다행히도 나의 집과 언니의 집은 멀지 않았기 때문에 15분 만에 언니의 집에 도착했다.


“으잇, 추워! 오랜만이야! 언니, 잘 지냈어?”

“어서 와~, 많이 추웠지? 조금 후에 치킨 오면 같이 먹자.”

“응~ 완전 좋아! 사실 나 오늘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어!”


이전에도 언니는 항상 좋은 영향력을 주었고 내게 무릎을 ‘탁!’ 치는 영감을 준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했던 결정들에 대해 언니와 대화하면서 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언니가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영화가 있다며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영화일 것이라고 소개했고, 음식이 오면 같이 먹으면서 보자고 했다. 어떤 영화인지 정말 궁금했다. 드디어 음식이 왔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언니의 집에 있는 커다란 TV로 보게 된 그 영화의 제목은 “노라노”였다.


영화 '노라노' 포스터 중 일부



자신의 삶을 개척한 노라노


영화 ‘노라노’는 김성희 감독의 작품으로, 대한민국 제1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한국이름 노명자)’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다.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이 기획했고, 노라노의 고객들에게 약 400벌의 옷을 기증 받아 대한민국 패션사의 한 획을 그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대작업이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는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이 해외 패션 디자이너들의 역사를 공부하거나 탐구할 일은 많은데 정작 한국인들에게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의 소중한 기록은 왜 없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이 되었다. 이 의문점을 시작으로 조사한 결과 1950년대 한복에서 기성복으로 넘어오던 그 시기, 패션의 ‘패’ 자도 모르던 한국에서 대한민국 제1호 패션 디자이너인 노라노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 영화가 탄생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 의복이 들어왔지만 당시의 한복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복이었고, 사람들은 주로 옷감을 사서 집에서 한복을 지어 입었다. 어느 한 순간에 한복에서 서양식 의복으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6.25전쟁 이후 여인들도 점점 밖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옷감이 적게 들고 입기에 간편한 양장을 입자는 ‘간소복 운동’ 바람이 불었다.


한복은 허드렛일을 할 때 거추장스럽거나 옷감이 끌리는 등의 불편한 점을 가진 반면, 기성복은 이런 불편함을 덜어 주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성복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누구나 양장을 손쉽게 사 입을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되었고, 양장은 완전히 우리의 삶 속에 정착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고유의 것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전통을 지키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통해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의 의복을 지으시는 한복 디자이너들도 존경한다. 다만 노라노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여성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면서 옷을 착용하기를 바랐는지를 잘 알았다는 점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노라노의 패션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영화에 나온 다음의 말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 정말로 '멋진 여자'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이 이때부터였다. 가슴이 뛰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노라노’ 라는 이름과 그분의 명성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매우 흥분되었다.


대중 앞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큰 이목을 끌었던 가수 윤복희 님의 미니스커트를 만든 사람이 바로 노라노였다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패션 모델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그 시대에 노라노의 옷을 입고 쇼에 서 준 사람들은 우리가 TV에서 자주 보았던 배우 엄앵란, 한국 최초의 미스코리아 진 박현옥, 모델 김은희, 최지희, 정혜선 등 주로 유명인들이다. 노라노는 여배우나 고관들의 부인, 주한 외국인 대사 부인 등에게 맞춤옷을 판매하면서 자신의 명성을 쌓아 갔다.


패션에 대한 열정 하나로만 살아온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의 작품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 입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던하고 우아하다. 현재 여러 미디어에서 한류의 바람을 자랑스럽게 보도하지만 한류의 바람의 1호는 바로 노라노의 로고와 ‘made in Korea’ 라고 박힌 그녀의 옷들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앙드레김도 노라노가 있었기 때문에 빛을 발한 케이스이다.


미국에서의 첫 컬렉션이었던 그녀의 작품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뉴욕의 메이시(Macy’s) 백화점 쇼윈도에 전시한 컬렉션 15점 전부가 디스플레이 되었다. 뉴욕의 백화점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후 성공적으로 몇 번의 컬렉션을 치른 후 좋은 옷감의 품질을 위해 섬유 공장도 노라노가 직접 운영했었다.



정치·경제적으로 말이 많았던 시기, 파격적인 의복의 표현으로 인해 사회적 편견과 홀로 싸워야 했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노라노는 그 당시 한국 여성들에게 자존감을 입혀 주었고 요동치는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오드리 햅번 스타일로 변신하여 당시 세기의 인기를 얻게 된 엄앵란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잡아준 사람도 노라노였다. 영화에서 노라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른 살 전후로
생산력이 가장
왕성했던 것 같아요.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공들여서
옷을 만들었지요.



노라노가 만든 옷들을 보유하고 있던 고객들이 기증해 준 옷들로 패션 전시회를 열게 된 ‘장미 빛 인생’ (La Vie en Rose)이라는 전시회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이 훌륭하고 멋있는 대한민국의 1호 패션 디자이너인 노라노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의 강한 의지와 노력에 매우 감사하게 되었다. 패션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노라노가 어떤 마음으로 옷을 지었는지 탐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무조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한국의 1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다큐멘터리 감독 김성희,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훌륭한 패션 보물들을 영영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한 언니의 말을 드디어 이해하기 시작했다.


미대를 졸업한 나에게는 미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미대를 나오더라도 어떤 친구들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미술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시대적으로 많은 장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매우 중요하다고 느낀다. 세계사나 국사를 좋아한다면 더 많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미술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각 시대별로 작가의 작품을 탐구할 때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의복, 문화, 음식, 사회적 이슈, 및 미디어의 발달 수준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미술 역사가 아니더라도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을 때 그 분야의 역사를 공부해 본다면 자신의 분야에 대해 더욱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최고가 되기보다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심으로 아름답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이 글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 입니다. 출판권자로부터 서면에 의한 허락없이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수정일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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