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다시 안부를 묻고 한 번씩 만나는 사이가 된 후배 아이가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된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후배가 먼저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관계를 거의 끊어야 할 만큼 바쁘고 불안한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조용히 천천히 멀어지는 흔한 방식의 연락두절이었기에 다시 얘기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나는 누구 하나를 특별하게 가까이하는 것도 아니라서, 이 아이에 관련한 어떤 소문이 돌거나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런 일-쓸데없는 소문 따위-에 귀를 닫았기 때문인지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한테 자신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하든 금시초문이었는데, 소문은 그 후로도 몇 번 회상할 때 상기시켰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억은 할 정도가 되었지만, 듣자마자 잊을 수 없었던 얘기는 이 아이가 우울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어떤 일련의 개인적인 사건들이 있었고, 그 문제들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우울한 상태라는 것. 나는 단번에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 스스로가 그 불행을 겪은 듯이 눈물을 쏟았다. 고작 몇 퍼센트 정도지만 내가 겪은 불행과 닮아 있어서.
세상 밝고 발랄할 줄만 알았던 애가 혼자 그런 일들을 겪었다.마음이 아팠다. 그 시기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얘기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 이해가 됐던 날이었다. 그 후로 같이 욕해줬으면 좋겠을 땐 욕을 해주고, 울고 싶은 것 같을 땐 가만히 있어주고, 아무렇지 않고 싶을 땐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당사자에게 느껴졌을진 모르겠지만 내 의도는 그러했다.
어느 날, 그 애의 사소한 장난이 나에게 전혀 사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그 관계로부터 도망쳤다.
그 애의 잘못은 사소했다. 내 문제가 사소하지 않았을 뿐이다.
갑자기 극심해진 우울감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거 아닌가, 심장이 철렁했던 아침의 통화도,
결국 내가 우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스스로를 해하는 상상을 몇 가지 시나리오로 반복재생했기 때문이고.
내가 싫어한다 했던 걸로 조롱하는 것 같았을 때도,
혼자 갖고 있던 외모콤플렉스에, 내 얘기를 중요하게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 만들어낸 조롱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애가 사과하면서 '언니가 우울증인지 몰랐다'라고 말했을 때, 머리가 울리며 사방천지가 하얀 방에 덩그러니 놓인 내가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