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루하 Sep 30. 2024

우울증이 아닌 나

그 애와 나의 차이


한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다시 안부를 묻고 한 번씩 만나는 사이가 된 후배 아이가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된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후배가 먼저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관계를 거의 끊어야 할 만큼 바쁘고 불안한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조용히 천천히 멀어지는 흔한 방식의 연락두절이었기에 다시 얘기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나는 누구 하나를 특별하게 가까이하는 것도 아니라서, 이 아이 관련한 어떤 소문이 돌거나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런 일-쓸데없는 소문 따위-에 귀를 닫았기 때문인지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한테 자신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하든 금시초문이었는데, 소문은 그 후로도 몇 번 회상할 때 상기시켰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억은 할 정도가 되었지만, 듣자마자 잊을 수 없었던 얘기는 이 아이가 우울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어떤 일련의 개인적인 사건들이 있었고, 그 문제들 있어서 지금까지도 우울한 상태라는 것. 나는 단번에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 스스로가 그 불행을 겪은 듯이 눈물을 쏟았다. 작 몇 퍼센트 정도지만 내가 겪은 불행과 닮아 있어서.


세상 밝고 발랄할 줄만 알았던 애가 혼자 그런 일들을 겪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시기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얘기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 이해가 됐던 날이었다. 그 후로 같이 욕해줬으면 좋겠을 땐 욕을 해주고, 울고 싶은 것 같을 땐 가만히 있어주고, 아무렇지 않고 싶을 땐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당사자에게 느껴졌을진 모르겠지만 내 의도는 그러했다.


어느 날, 그 애의 사소한 장난이 나에게 전혀 사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그 관계로부터 도망쳤다.

그 애의 잘못은 사소했다. 내 문제가 사소하지 않았을 뿐이다.


갑자기 극심해진 우울감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거 아닌가, 심장이 철렁했던 아침의 통화도,

결국 내가 우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스스로를 해하는 상상을 몇 가지 시나리오로 반복재생했기 때문이고.

내가 싫어한다 했던 걸로 조롱하는 것 같았을 때도,

혼자 갖고 있던 외모콤플렉스에, 내 얘기를 중요하게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 만들어낸 조롱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애가 사과하면서 '언니가 우울증인지 몰랐다'라고 말했을 때, 머리가 울리며 사방천지가 하얀 방에 덩그러니 놓인 내가 보이는 듯했다.







그래, 난 우울증이 아니다.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차에 치이거나 침대에 누워 죽은 채로 발견되는

장면이 떠오르는,

조금 눈물 많은 사람이다.

오늘 침대에 누워 잠에 들면

이대로 다시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진,

버려지는 게 두려워서

방전 직전의 최소한의 전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틸 뿐인 사람,

나 말고도 많잖아..?


진단받기 전까지 난, 

아무 병명도 없는 사람, 건강한 사람.

그게 그 애와 나의 차이였다.






이전 01화 우울증과 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