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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Oct 03. 2024

정신과 진료를 꼭 받아보세요


정신과에 가기가 너무 무서웠다. 나는 단 하나의 이유로는 절대 움직이지 못하는 극도의 무기력을 앓고 있었다. 몇 개 칸으로 나뉜 게이지가 드디어 마지막 한 칸까지 채워졌기 때문에 정신과에 가볼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보통 사람의 표본이 되는 건지 아님 유난인 건지, 비교군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유튜브나 네이버로 나한테 있는 증상들을 검색해 보고 미루어 짐작해 볼 뿐.. 자연스레 내 분신과도 같은 휴대폰은 SNS나 광고, 영상에 알고리즘을 반영해서 온통 비슷한 것들을 걸어놓았다.


마침 정신과에 가는 것을 망설이는 분께 추천한다는 영상이 띄워지기 전까지, 난 스스로에게 ADHD와 우울증이 있을 것이라는 자체진단을 내렸다. 그 영상도 정신과에 가기 두렵다면 이 검사를 해보라는 일종의 광고였지만, 너무 위험할 것 같은 기분이 며칠째 지속되고 있었기에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상당히 길고 긴 검사지를 체크하고 제출했더니 하루 이틀 내 전화상담을 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검사지를 내고 결과지를 미리 받아 읽을 수 있었는데, 별의별 결과가 나왔다. 업무만족도가 보통이면 실제로 느끼는 만족도보단 훨씬 높은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이 위험 수준이었다. 게다가 나한테 무슨 위험 수준의 PTSD가 있단다. 걱정했던 ADHD나 우울증뿐만 아니라 정신질환표 부분이 죄다 위험, 주의, 중증.. 이젠 하다 하다 정신마저 아프다니.. 도대체 나란 인간이 제대로 해온 게 뭐가 있나, 왜 살아있나. 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체감한지 오래됐지만 과거와 현재에서 오는 회의감은, 바로 그 뒷면에 있었나보다.


정신과 가는 것만 무서울 줄 알았는데, 전화상담시간이 다가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상담은 받지 말까.. 못하겠다 할까..'


지난 건강검진이 생각났다. 죽을 생각 내지 계획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렇게 울다 '네..' 한마디만 하고 나왔다.


이번엔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전화가 걸려왔다. 이유 모를 죄책감에 벌써 한바탕 울고 있었던 나는, 애써 목소리를 숨기며 상담사님의 질문에 대답을 해나갔다. 덧없는 노력이었다.


"너무 걱정돼서, 빨리 얘기 나누고 싶었어요"


상담사님은 그 말을 시작으로, 내 눈물콧물이 섞인,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들을 들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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