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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Sep 26. 2024

우울증과 돈


문득 다른 사람이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돈만 있으면 우울증은 저절로 낫는다'라고.


나는 돈을 벌고 있을 때도 무기력하고 우울했는데,

돈을 안 벌면서 우울한 지금은

그 말에 약간 동요하게 된다.


돈이란 게 많았던 적이 없니까

저절로 나을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뉴스에 흔히 나오는 연구결과엔

'돈 많은 사람들 중에서 더 많이 발병했다'라고 하지만, 


그건 단순히

우울증 검사를 더 많이 해서 나온 수치 같다.


고작 나 하나만 봐도,


인생 대부분이 우울했지만

몇 달 전에 처음으로 정신과를 갔다.


그래서 '최근 2주 안에...'로 시작하는 질문들에

모두 긴가민가한 점수를 매겼다.


진단받지 않은 병들은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병원비가 무서워서

증상이 좀 있더라도 모른 척,

별일 없다며 살게 된다.


평생 나 몰라라 할 수 있었는데 어쩌다

정신과를 갈 생각을 했냐 하면,


한 달 뒤에 들어올 퇴직금을 믿고 갔다.

진료비와 약값이 십몇만원쯤 나온대도


한 번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도망친 새 집에서도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어서.
나도 우울증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만약 우울증이 아니라고 하면

금방 나아질 수도 있는 문제인 같아서였다.

3년 전,

국가건강검진에 정신건강검사가 추가돼서

처음으로 병원에 검사지를 내고

얘기를 해본 일이 있었다.


다 체크하고 나니

정신적으로 위험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은

종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알고 싶었고,

어차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동생이 심리학과라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검사받는 사람이

사실이랑 다르게 할 수도 있지 않냐고.


그랬더니

거짓말하는지를 알아보는 질문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러니 소용없는 짓이다.



건강검진을 하다 보면

마치 입사동기마냥 한 무리가 만들어진다.


건강검진 순서가 정해져 있다 보니

같은 시간대에 오면

계속 같이 이동하는 모습이 되는데,


문진표를 보면서 의사 선생님 얘기 듣는 시간에

정신건강검사지 때문에 나 혼자 남겨졌다.


의사 선생님은 콕 집어

죽을 생각을 해본 적이 있냐고 다시 물으셨다.


그러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른 사람 입으로 듣는 내 생각이,

나한테 참 모질구나

싶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새삼 확인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3년 전에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고,

정신과는 3달 전에 갔다.

진료 일주일치 약을

4만 4천 원에 받아오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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