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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Oct 07. 2024

나를 아는 사람 아무도 몰래 쓰는 글..


  인천의 어딘가에서 태어난 나는,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가본 적 없고 집에서 컸다.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는데 힘도 세고 잘 싸돌아다녀서 맨날 무릎 까먹고 코피도 자주 쏟았다. 가까운 사람한테 까불거리는 천재였다.


부모님한테 오냐오냐 키워진 것 같진 않다. 왜냐하면 그 어린 와중에도 부모님이 동생한테 오냐오냐 하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동생이 있는 아이들은 일찍부터 의무를 강조당하며 산다. 모두가 그렇듯 처음부터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받아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다. 살 땐 종종 새벽에 잠에서 깨어 죽음을 두려워하며 덜덜 떨었다. 그때 주변에 죽은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는데도, 거울 없인 볼 수 없는 나란 존재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이런 걸 막연하게 무서워했다.


  일곱 살 땐, 엄마의 재혼을 알았다. 우리 가족과 같이 살지 않지만 우리 엄마를 '엄마'라고 하는 언니가 두 명 있었고, 그들은 우리 아빠를 '아저씨'라고 부르니까. 하지만 "엄마가 재혼한 거죠?"라고 물어봤을 때 친척들은 모른 했다. 얼버무리면서 처음부터 그런 질문은 들은 적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른들의 사정을 전혀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엄마는 아빠와도 이혼하려 했다.










  며칠인지 몇 달인지 모를 별거기간 끝에 엄마를 만나러  날이었다. 우리 가족 모여서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고모들 3명과 엄마가 대면하는 자리에 왜인지 나랑 동생이 껴 있는 모양새다.


부모님의 별거기간에 나는 아빠랑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어색했다. 고모들은 내 등을 떠밀며 엄마에게 가서 안기라고 했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얼굴을 하고 내 쪽에 시선도 주지 않는 사람에게. 


  등이 떠밀릴 때마다 더 뒷걸음치게 됐다. 고모들과 엄마는 이내 뭐라 뭐라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아홉 살, 일곱 살 아이를 세워두고 누구도 부끄럽지 않은 듯이. 우리가 받을 상처는 아무 상관없는 듯이..



  눈 깜짝할 새였다. 고모들이 한순간에 일사불란하게 날 밀어 넣고, 동생만 데리고 사라졌다. 떠밀려 남겨지자마자 통곡하는 나를 몇 초도 눈앞에 남겨두기 싫었는지, 엄마 역시 그 술집 유리문 바깥으로 밀쳐 내버렸다. 


캄캄한 밤, 모르는 동네, 모르는 거리.. 내가 기억하는 건 그뿐이다. 그날의 온도, 습도, 냄새.. 상처받은 사람들은 그런 걸 절대 잊지 못하던데. 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그 짧은 순간에 두 번 버려졌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다린다고 해도, 문 안의 여자가 끝까지 날 버릴 거라 믿었다. 



내가 절대 잊어버리지 못했던 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날... 아홉 살 어린아이였던 날...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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