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워서 드라마 하나를 정주행 했다. 아까워서라도 한 호흡쯤은 일부러 끊어 보는데, 틀자마자 멈추질 못했다. 이상하게 졸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 편에 약 1시간, 총 열두 편. 열두 시간가량을 그 세계에 살다왔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였다.
왠지 힘들 때마다 눈에 띄었지만 나중에, 라며 보기를 미룰 수 있었던 드라마였는데 오늘은 지나칠 수가 없었다. 분명 1화 재생이라는 큰 문턱을 넘었을 때 나란 애의 기분도 발랄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드디어 미뤘던 걸 하나 시작했다!'
이런 뿌듯함에 사로잡혀서 완벽한 타인으로 드라마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산이 있었다.
'이야기는 늘, 원했던 것을 마지막에 잠깐 보여주고 끝이 난다'
난 이 드라마가 보고 싶었던 이유를 아주 마지막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아픈 사람들이 나아지길 기다리면서 정신없이 울다 보니 금방 끝나버렸다. 그곳의 아픈 사람들 이야기가 모두 내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미래와 희망이 불투명한 상황 때문에 불안한 심리상태의 고시생과, 그를 아꼈던 주인공 간호사. 두 사람이 확실히 내 안에 존재했다.
두 사람에게 완전히 이입되어 눈물을 쏟는 내가 있으면,
'너는 저 사람들만큼 우울할 일이 없었다, 너의 우울은 그 정도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 내가 또 나타나 '거짓말'이라고 적힌 딱지를 붙여댔다. 딱지를 붙이는 쪽이 결코 좋은 역할이 아니란 걸 알아도, 그 애가 던진 건 검은 물감 한 방울이라 내가 의심에 물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결국은 또, 나를 믿지 못하는 엔딩이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커튼으로 새어들 때쯤 잠깐 잠이 들었다. 4시간 동안 꼼짝없이 누웠다가 햇빛이 눈부셔서 일어났다. 그러고.. 하루종일 뭘 했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계속 울었던 것 밖에 생각이 안 난다.
동생이 일 마치고 전화를 했길래, 원래 잘 안 받지만 웬일로 받게 됐다. 일하다 있었던 일 얘기를 좀 듣고 있다가 눈물이 또 왈칵 쏟아졌다. 낮에 한참 울다 혼잣말로 읊조렸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동생에게 털어놓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닌데, 쉬었다가 들어가려니까 너무 무섭고 못할 것 같아.. "
눈물에서 마셔본 적 없는 알콜 냄새가 올라왔다. K-장녀 실격이다.. 내 불안 섞인 우울함에 동생은 얼마나 더 불안해졌을까.. 며칠 전 우울을 얘기하던 동생에게 쏘아붙였던 내 말이 고스란히 돌아온대도 할 말이 없다.
'나 하나의 우울과 불안만으로도 벅차는데, 동생이 자꾸 우울 가득한 카톡을 보낸다. 너무 힘들다. 보기 싫다.. 내가 가진 것도 외면하기 버겁다고 얘기한 적이 없나.. 제발 자기와의 대화를 하라고, 말했는데.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나한테 얘기하냐고, 울면서 화낸 적도 있는데. 이조차도 듣지 않을 걸 알아서 뒷목이 뻐근하다..'
라고 일기까지 남겼다. 정말.. 난 K-장녀도 뭣도 아니다. 나쁜 년이다. 내가 우울하다고 동생한테 심한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