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다른 사람이 들었다던 말이 떠올랐다.
'돈만 있으면 우울증은 저절로 낫는다'라고.
나는 돈을 벌고 있을 때도 무기력하고 우울했는데,
돈을 안 벌면서 우울한 지금은
그 말에 약간 동요하게 된다.
돈이란 게 많았던 적이 없으니까
저절로 나을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뉴스에 흔히 나오는 연구결과엔
'돈 많은 사람들 중에서 더 많이 발병했다'라고 하지만,
그건 단순히
우울증 검사를 더 많이 해서 나온 수치 같다.
고작 나 하나만 봐도,
인생 대부분이 우울했지만
몇 달 전에 처음으로 정신과를 갔다.
그래서 '최근 2주 안에...'로 시작하는 질문들에
모두 긴가민가한 점수를 매겼다.
진단받지 않은 병들은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병원비가 무서워서
증상이 좀 있더라도 모른 척,
별일 없다며 살게 된다.
평생 나 몰라라 할 수 있었는데 어쩌다
정신과를 갈 생각을 했냐 하면,
한 달 뒤에 들어올 퇴직금을 믿고 갔다.
진료비와 약값이 십몇만원쯤 나온대도
한 번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도망친 새 집에서도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어서.
나도 우울증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만약 우울증이 아니라고 하면
금방 나아질 수도 있는 문제인 것 같아서였다.
3년 전,
국가건강검진에 정신건강검사가 추가돼서
처음으로 병원에 검사지를 내고
얘기를 해본 일이 있었다.
다 체크하고 나니
정신적으로 위험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은
종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알고 싶었고,
어차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동생이 심리학과라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검사받는 사람이
사실이랑 다르게 할 수도 있지 않냐고.
그랬더니
거짓말하는지를 알아보는 질문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러니 소용없는 짓이다.
건강검진을 하다 보면
마치 입사동기마냥 한 무리가 만들어진다.
건강검진 순서가 정해져 있다 보니
같은 시간대에 오면
계속 같이 이동하는 모습이 되는데,
문진표를 보면서 의사 선생님 얘기 듣는 시간에
정신건강검사지 때문에 나 혼자 남겨졌다.
의사 선생님은 콕 집어
죽을 생각을 해본 적이 있냐고 다시 물으셨다.
그러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른 사람 입으로 듣는 내 생각이,
나한테 참 모질구나
싶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새삼 확인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3년 전에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고,
정신과는 3달 전에 갔다.
진료와 일주일치 약을
4만 4천 원에 받아오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