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Jul 14. 2019

3분진료 공장에서의 셀프 인터뷰 (1)  

안녕하세요. 본인과 하는 일에 대한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 저는 종합병원의 종양내과에서 일하는 40대 의사입니다. 주로 암환자들을 진료합니다. 각종 검사를 해서 암을 진단하거나, 암에 대해 항암제를 처방해서 치료하기도 하구요.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증상조절을 돕기위한 돌봄과 상담을 제공합니다. 


의사라구요? 공장이라면서요. 병원이 공장인가요? 

- 3분 진료라는 서비스 제품을 쉴 새 없이 생산해낸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공장이라고 지어봤어요. 가끔은 정말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노동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공장에서는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는데, 진료는 그것과는 달라야 하지 않나요? 

기본적으로는 그렇죠. 같은 질병이어도 사람마다 나이도 몸 상태도 각종 사회경제적 조건도 다르니까요. 그런데 그런 여러가지 조건을 고려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한히 많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4기 위암 환자가 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될까요.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는 하기 어렵고. 항암치료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있겠죠. 체력상 항암치료를 견디기 어렵다면 증상에 대한 완화치료만 하겠고, 견딜 수 있을 정도라면 여러가지 항암제 중에 어떤 조합을 선택하느냐가 되겠죠. 그건 의사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판단은 아니에요.대부분의 질병은 표준화된 진료지침이라는 게 있어요. 많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 정해진 최선의 진료방향인 것이죠. 그 안에서 대부분 결정되어요. 


흠.. 의사가 하는 일은 좀더 복잡한 일인 것인 줄 알았는데.... 공산품이라기보다는 수공예품 장인같은 거 아니었나요? 다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하는 것이라면 실망인데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수공예품이 항상 공산품보다 좋은 건 아니잖아요? 수제로 자동차나 컴퓨터같은 것을 만들어낼 순 없는거잖아요. 만들어낸다고 해도 대단히 효율이 떨어지고, 정확성 역시 기계로 만든 것보다 못하겠죠. 오늘날의 의료는 좀더 규격화되고, 관리되는 정교한 공산품과 같아요. 그리고 의사의 진료는 사실 그 가이드라인만 외워서 하는 것만은 아니구요. 그것이 나온 생의학적 배경지식과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해요. 그리고 가이드라인이란 것이 영구적인 게 아니고 계속 바뀌는 것이라 매년 업데이트된 사항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구요. 왜 바뀌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이 있어야죠. 그걸 같이 진료하는 간호사나 약사들에게 교육하는 역할도 맡아요. 종종 연구자로서의 의사는 그 가이드라인을 바꾸는 연구를 해내기도 하죠.


듣고 보니 또 다시 복잡하게 여겨지기도 하는군요. 그 정도라면 공장 노동자가 아니라 공장장 아닌가요?  

글쎄요 공장장이라기 보단... 대형 공장에서의 한 단위의 파트장 정도? 공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또 다른 것인데요. 종합병원에서의 진료가 굉장히 분업화되어 있어요. 공장라인처럼 계속 쉴새없이 돌아가죠. 의사는 말하자면 여러 조립라인이 만나서 다시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해요. 어떤 조립라인으로 환자를 보낼지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거죠. 심사숙고할 시간은 별로 없어요. 대단히 빠른 시간 내에 제한된 정보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해요. '3분 진료' 라는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공장 부서의 파트장의 역할이랄까요. 


그런데 그 3분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 치고는 너무 짧은 순간이라는 건 아세요? 많은 환자들이 그것 때문에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도요? 환자가 조립라인 위에 우두커니 놓여진 부품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정말 좋은 진료일까요? 

네, 그래서 공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 것이에요. 공장 방식의 철저한 분업화와 품질관리는 진료의 수준을 올려놓는 것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어쨌든 제가 의과대학에서 배운 것은 의료서비스 공장의 파트장 역할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은 공장이라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평균 수명은 세계 최고수준이고 의료비용은 최저수준이죠. 고효율의 의료인 건 맞아요. 하지만 환자도, 의료인도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인 것도 맞지요. 

(2편에 계속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