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나이, 다른 라이프

야근 요정은 요정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나와는 다른 사람.

by Shio 시오

T는 성공적으로 러닝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나는 기뻐 대답했다.

'오 러닝 재밌나요? 잘 됐네요!! 응원해드릴게요 진짜로 ㅋㅋ'

'네 뛰어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ㅎㅎ 제가 8주 다 뛰면 밥 살게요!'


그렇게 우리는 런데이 아이디를 주고받아 친구가 되었다. 그는 평일 11시 이후쯤 러닝을 켰고, 그 시간에 나는 러닝을 끝내고 한참 걷다가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응원을 보내기 딱 적합한 시간대였다.


자세하게 상황의 전말을 얘기하자면, 나는 그 당시 내가 러닝의 길로 인도한 사람들을 온보딩 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말했던 대로 20명 남짓한 지인들을 런데이를 깔게 했고, 그중 열몇 명 정도의 사람들이 러닝을 주 1회 이상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성심성의껏 응원을 보냈다. 또 그들을 달리게 해 놓고 나는 안 달리면 얼마나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는가. 나도 주 3회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한 응원의 굴레로 빠져있었던 것이다...


몇 주가 지난 뒤 T는 내 런데이 친구들 중에도 꽤 꾸준하게 러닝을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역시 T는 한다면 한다니깐. 나는 마치 제자를 양성(?)한 스승처럼 뿌듯하게 그의 러닝을 응원했다. 그러다가 두 달이 더 지난 어느 날. 그에게 DM 한 통이 날아왔다.


'S, 잘 지내죠? 저 이제 곧 8주 코스를 다 뛸 것 같아요! 덕분에 진짜 체력도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번에 얘기했던 대로 밥을 한 번 사고 싶은데, 다음 주에 저녁 한 번 같이 먹어요!'


우리는 그동안 몇 번의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올해 여름부터 같이 하게 된 프로젝트 덕분에 알게 된 지 1년 반 만에 식사 정도는 하는 동료 사이가 된 터였다. 그런데 저녁이라니. 이 친구 나에게 되게 고마운가 본데? 했다. 그런데 양고기를 사준다는 게 아닌가. 양고기라니. 그건 쪼끔 부담스러운 메뉴 아닌가. 동료에게 사주기엔 너무 비싼데... 아냐 아냐. 그렇지만 T가 누구인지 잊은 거야? 예의공손하게 선 잘 긋기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설마 내게 호감을 느끼고 그럴 린 없어...


어떤 의도일까 아리송해하며 T와 회사 로비에서 만났다. 짐을 다 챙겨 나온 나와 다르게 그의 등과 손은 가벼웠다.


"헉 T. 설마 밥 먹고 또 야근해요?"

" 네에 그래야죠. 항상 그렇듯이 ㅎㅎ"

그는 당연하다는 듯 지친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하! 이 사람 정말 별 다른 의도는 없구나.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고 신이 나기 시작했다. 오예 그럼 양고기 맛있게 먹어야지!


그렇게 우리는 고기를 구우며 러닝의 효능과, 8주 코스에 대한 후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어진 대화는 회사에서 나누는 것보다는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일 말곤 관심사가 무엇이고, 다른 취미는 없는지. 그런데 이 사람. 나와는 정 반대였다. 우리는 회사에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이 겹치는 동료일 뿐이지, 그 외의 라이프스타일은 참으로 달랐다.


나는 집에 혼자 있는 법이 없다. 나가서 뛰거나, 걷거나, 사람을 만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집 밖 카페에 나가서 한다. 일을 좋아하지만, 일 말고 관심 있는 것도 많다. T는 잠자는 시간 말고 대부분은 회사에서 보낸다. 친구들이 불러서 만나는 것 말고는 사람에게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도 없다. 일에 모든 힘을 쏟느라 운동은 물론이요 다른 취미나 여가 생활은 제로다.


그는 내가 회사 일도 즐겁게 하면서 그 외 일도 즐기는 에너지와 여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흥미로워했다. 나는 그가 삼십 대 초반에, 그러니까 어느 정도 일도 손에 익었으면서도 전보다 여유가 생겼을 타이밍에도 일에 한없이 집중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역시 이 사람에겐 배울 게 있겠어. 앞으로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야근 일정을 배려하고자 우리는 후딱 고기만 먹고 헤어졌다. 즐거운 시간이었어! 룰루랄라 집으로 향하는 내게 카톡이 도착했다.


' 회사 메신저에서 연락처 보고 저장했어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한 번 밥 먹어요'


앗 카톡을 보내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인데. 혹시나 호감을 가진 걸까 걱정하는 나를 비웃듯 그의 인사는 또 다른 대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잠시나마 그의 의도를 의심한 것에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예감이 좋은 걸. 좋은 친구 한 명이 생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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