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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에이치제이 Feb 04. 2022

그, 2월 4일

꼭 29번의 잠 - (미완성의 나머지) 9 리옹 >> 안시


꼭 8번의 잠, 리옹 5일 + 안시 1일





memo


프랑스 버스 OUI / 리옹 >> 안시, 12유로 (무게 초과 짐 실을 경우 +5유로)

am 10:30 출발 -- pm 12:45 도착  

Airbnb 개인실 예약 / 3박 4일 사전결제 완료 (전날까지 취소 가능, 서비스 수수료 환불불가)




+++


프랑스 도시 주요 장소에서 곧잘 발견되는 프랑스 빵집 Paul에서

오늘은 씨앗이 박힌 바게트를 사서 버스에 오른다


프랑스도 교통체증은 있어 버스는 도착 시간보다 30분이 딜레이 되었고

그래도 잘 도착한 안시의 역은 리옹 역보다 훨씬 크고 세련되어

알프스 산맥의 기슭에 자리 잡은 도시라는 수식이 아직은 실감 나지 않았지만

곧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미리 언급한다 어차피 탄로 나 버릴 

 첫날 안시의 놀라운 풍경이 바로 아래 펼쳐지기 때문에





리옹 Lyon 5일


비가 왔다가 갠 아침 

도시는 젖어 있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그래도 파란빛을 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는 일찌감치 집을 나와 짐을 끈 채로

론 강을 지나 - 테호 광장을 지나 - 벨쿠르 광장을 지나 - 숀 강에 잠시 들렀다가

역으로 가는 중이다 그 길들을 그냥 휙휙 지나가지는 않고 천천히 걸으며

마지막으로 도시와 느린 작별을 하는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을 이긴 하늘의 한 편이 환상적이다 와--아

이 풍경을 보고 갈 수 있는 나는 행운아다

잦은 여행운이 곧 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지만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이별을 받아들이며 이제 리옹역으로 간다





안시 Annecy 1일


크지 않은 도시 복잡하지 않은 길 위에서 오랜만에 조금 헤매다가

숙소를 찾았다 찾기 힘든 골목길에 숨어있지 않은 곳을 교차로의 건너에 있는 곳을

어렵게 찾다니 다시 복귀한 길치 내비게이션이 반가워 그냥 웃고 만다


안시에서 예약한 숙소는 사실 에어비앤비에서도 좀 인기 있는 곳인데

그나마 겨울에 이곳에 왔으니 예약이 가능했던 것 같다

물 한 잔과 커피 한 잔 그들의 친절하고 친근한 인사와 대화

3번의 잠을 청할 방은 사진 그대로였고 오히려 더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으며

개성이 넘치는 컬러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연인이거나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은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했고 결코

평범하지 않았는데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오픈 마인드가 느껴지는

사교적이고 자유로운 사람들 같았다

Annecy





우선 역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지도 속의 도시가 크지 않고 길이 어렵지 않아 어이없이 길을 잃지 않게

이곳에서부터 찬찬히 길을 걷고 익힐 생각이다


안시는 알프스 청정의 안시 호수가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풍경으로 꼽히지만

구도심을 통과하며 흐르는 강과 운하 또한 인상적으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만 알프스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것은

이런 독특한 풍경 때문일 텐데 얼마의 길을 걷자마자 그 사실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고 금방 이 경의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눈앞의 무언가가 실제 하지 않는 어떤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상 이상의 지나친 아름다움을 뽐내면 도리어 화를 부르는 듯한 이런 문장이 

저절로 튀어나오고 만다 안시 호수 앞에 다다랐을 때 떠올린 생각이다


론 강과 알프스를 끼고 있어 론 알프스라 불리는 지역에 속한 안시는

알프스 산맥 끝자락이라고 하지만 평범한 상점과 건물의 길 사이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알프스나 그림 같은 호수를 더욱더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드는 알프스 때문에

자꾸만 감탄의 실소를 하게 되는 곳이다


겨우 첫날일 뿐인데 가장 먼저 달려온 안시 호수 앞에서

방금 헤어진 애인을 잊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져버리고 마는 헤픈

마음이 되는 것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호수는 몇 번을 돌아봐도 어이없이 아름다웠고 비가 온 뒤의 하늘은 빠르게 흐르는

구름 때문에 시시각각 장면이 전환되어 그 모습을 빠짐없이 보고 또 보고

담고 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게 오롯이 담기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마성의 안시 호수를 

겨우 마음을 다잡고 등 돌리고 돌아서 나와 구도심의 길을 거슬러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벌써 내일이 기대가 되고 

나대는 심장이 제어가 되지 않는다 또 깊은 저녁의 밤하늘은 언제부터

그렇게나 맑고 푸르러졌는지 부디 내일은 더 좋은 날 더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기를






+


+


집으로 돌아오자 입실할 때는 보지 못한 지인 한 명이 합류해

세 사람이 와인을 마시며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번째

인사와 소개가 이어졌고 그들은 나에게도 와인과 대화를 청했다 하지만

와인과 분위기에 마음이 끌리긴 했어도 나는 알코올과 친하지 않고 언어도 유창하지 않아

아쉽게도 그런 딱한 유형의 인간은 그들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커피를 한 잔 내려 주방의 식탁에 앉아 마시며 그들 대화의 언저리에 잠시 머문 후

방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방에서는 거실의 소음이 잘 들리지 않았고

나는 서둘러 씻은 다음 내일을 위한 충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덧붙여 집주인들은 환경 운동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서

주방에서는 물을 약하게 틀고 샤워는 5분 내로 끝내야 하는 것을 잠깐이라도

이 집에서 지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그들은 멋진 사람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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