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20 바트 고이세른
꼭 20번의 잠, 다섯 번째 도시에서의 스무 번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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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pm10시 즈음 잠이 들었는데 새벽 1시 즈음 깼다
다시 잠들려고 노력했지만 서늘한 방 안 공기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이불을 싸매었지만 이내 포기한다
미확정된 일정들을 정리하고 검색하고 메모하면서
휴대전화가 없고 와이파이가 잘 되지 않았다면 이 어둠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조식 시간이 되어 내려가니 나 밖에 없고 그래서인지
천천히 세팅되는 접시들을 기다리며 본의 아니게 재촉하는 꼴이 됐나 싶다
그렇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지 차라리 다행이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본격적으로 마을을 탐닉하러 나선다
체크인하는 부부, 바깥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이가 인사를 건네 온다
마을을 다닐 때도 길을 걷다 마주치는 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직전 나라의 도시들보다 이곳 나라의 작은 도시는 일상의 친절함이 자연스럽다
아직 달이 떠 있는 하늘이 어제보다 더 깨끗하다
이곳은 모든 게 깨끗하고 선명하다 공기마저 그러해서 허파와 폐가 간헐적으로
놀라는 신호를 보내온다고 느낀다
어제 가지 못했던, 반대쪽의 주택과 가게들이 늘어선 길로 향한다
여기 있다면 꼭 소장하고야 말았을 썰매가 가장 눈에 밟힌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목조 주택들은 가까이 다가서면 같은 것 하나 없이
집주인들의 안목과 개성이 잘 배어있고 또 어찌나 아기자기하고 탐나는지
똑똑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가
그네들의 사는 모습을 확인하고 공유하고 싶은 궁금증이 멈춰지지 않는다
겨울을 위한 도시답게 이곳은 또 무엇보다 다양한 겨울 스포츠 용품들이
일률적으로 진열되어 있지 않고 제멋대로 멋들어지게 놓여 시선을 붙잡는다
어느 것 하나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동안의 나의 삶이 목격한 딱딱함과
확연히 다른 자유분방함과 자연스러움의 아름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은 사람을 본 건
아이들이 모여 있는 어린이집의 놀이터에서였다
언제나 싱그럽고 활기찬 기운을 주는 하이톤의 목소리들이 섞여 내는
기분 좋은 소란함에 잠깐 미소가 지어졌고
멀지 않은 곳에서 당도한 교회의 고요함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는
갑자기 차단된 소음에 상반된 감정의 미소가 지어졌다
어제오늘 너무나도 그리운 따뜻한 공기가 가득할
아늑한 레스토랑의 문을 차마 열지 못하고 지나치며
이렇게 주저하는 사람이라는 게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이고
크리스마스를 전시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예쁨을 의식적으로 담으며
미련을 한 구석으로 치워버린다
눈이 내리면 불편해지는 교통이나 더러워질 길들을 염려하는 도시와 달리
발자국조차 함부로 찍혀있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뒤덮인
이 모든 장면들에는 잡티와 같을 나의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사진 속에는 좀처럼 내가 등장하지 않는다
원래 풍경 사진을 좋아하지만 눈이 내린 오스트리아의 (잘츠 감머구트 지역)
이 풍경들은 그냥 이대로 감동적이고
사는 동안 눈이 내릴 때면 오랫동안 이 풍경들이 1순위 추억으로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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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멋진 풍경은 어제도, 오늘도, 다시 또,
되돌아가기
(카메라를 수동모드로 조정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거칠어 보이지만 이 모드가 꽥 마음에 든다)
이 때문에 나는 숙소로 가려던 길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기차역 쪽으로 향했고
새로운 길을 걷는 것처럼 새로운 사진을 찍는 것처럼
다시 걷고 다시 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신나는 일이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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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2시 즈음 숙소로 돌아왔다 습도 높은 유럽 겨울 날씨에 제대로 데인 날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손발이 얼어서 따뜻한 물로 충분히 씻는다
담요와 이불을 둘러 싸매고 누웠는데
충분히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일어났는데도 오후의 쪽잠조차 깊이가 없다
pm4시경 담요를 칭칭 감고 1층으로 내려가 불쌍한 표정과 힘없는 목소리로
언어 대신 소통을 시도한다 따뜻한 물 2잔이 필요해요..
물을 마시고 새 수건을 받고 담요를 한 장 더 부탁해서 방으로 돌아온다
속이 데워지니 좀 나아지는 것도 같다
이곳이 좋지만 안팎에서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실 하나가 힘들다
그래도 처음 온 이곳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시 몸과 옷을 동여매고 한번 더 숙소를 나선다
숙소에서 나와 늘 좌회전을 한 뒤 다리를 지나 동네로 향했는데
이번엔 숙소를 나와 우회전을 한 뒤 얕은 언덕이 있는 길을 올라본다
하얀 겨울에 한 겹 더 폭 쌓인 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외출 결심을 하지 않아 잠깐이라도 이곳을 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겠지만) 보고 떠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입맛이 없지만 그래도
따뜻함의 차와 비타민의 과일과 그리고
장크트 길겐 호텔에서 준 (체크아웃 선물) 잼을 바른 빵을
나의 나머지 날들을 위해 부지런히 먹어 둔다
오늘 밤에는 덜 떨고 조금만 잘 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