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2월 29일 and..

꼭 29번의 잠 - 1 로마로 가는 야간열차 >> 로마

by 윤에이치제이

END 크리스마스의 잠이 끝이 났지만, AND 로마에서의 잠이 다시 시작된다

로마 1일






12월 29일 memo


1안 - 크로아티아 : 잘츠부르크 >> 자그레브

(자그레브, 스플리트, 마카르스카, 두브로브니크 (몬테네그로 당일치기 포함), 트로기르, 시베니크)


2안 - 이탈리아 : 잘츠부르크 >> 피렌체

(피렌체, 시에나, 산지미냐노, 아시시, 피사, 볼로냐, 친퀘테레)


3안 -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론다) >> 포르투칼 (리스본 포르투 신트라 호카곶 카스카이스)


4안 - 이탈리아 : 잘츠부르크 >> 로마

(only 로마 한 달 최종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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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 Night / 잘츠부르크 >> 로마 야간열차, 12월 29일 pm10:02 출발-12월 30일 am9:22 도착

사전 예약 필수, 6인 좌석 칸 예약, 1인 59유로 ( * 20유로 추가 시 6인 쿠셋(침대칸) 가능)


B&B 싱글 룸 / 12월 30일 - 1월 27일, 28박 예약 (Air BnB)

도시세 10일 분 + 세탁비 별도 결제


eroma 교통패스 / 교통정액권 (한 달 사용) 38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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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

이제 로마로 간다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하기 위해 유로 나이트(야간열차)를 탄다


고민을 많이 했던 이동 일정이다

오래전 유럽여행에서 이용했던 야간열차는 지금보다 쌩쌩했던 기운에도 편치 않았고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

그래서 야간 이동은 최후까지 미뤄두고 싶은 결정이었다

닥치면 다 하게 되고 해낸 일은 결국 추억으로 남지만

이번 여행은 돈이나 시간보다는 여유를 쫓는 여행이었으면 했으니까

그런데도

딱 한 번의 장거리 이동인 것과 이번 여행의 나름의 철칙대로 날짜 계산을 하고 보니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으로 이 결정이 낫다 싶어 결국 늦은 밤 기차역에 왔다


야간열차의 유형은 나라 간마다 달라서 어떤 열차를 타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이것저것 찾아보고 가장 괜찮은 좌석 칸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침대칸도 있지만 어차피 자는 건 글렀다는 걸 경험으로 아니까

나머지는 여행운에 맡길 수밖에






우선 아름답지 못한 한 장의 사진에 대해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좌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오한 창피함의 발끝은 유념치 말기를


이 기차에서 내가 예매한 좌석 칸은 복도식의 길 양쪽으로 각각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들어가면

한쪽에 3개씩 마주 본 형태로 여섯 개의 좌식 의자가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마주 보는 두 개의 좌석의 아래쪽을 당겨 펼치면 의자를 간이침대 형태로 만들어

편히 누워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게 활용하는 건 좌석이 비었을 때 가능한 일인데

겨울 여행의 야간열차는 예약자가 많지 않아서

내가 예약한 칸에는 나와 서양인 여자 1명, 이렇게 두 명이 배정되었다

그러므로 가운데 마주 보는 두 좌석을 비워두고도

각각 사이드를 차지해 의자를 붙여 침대를 만들어 편히 갈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은 여행의 행운이겠지


좌석을 펴서 침대 만드는 방법은 성실한 정보 수집 여행자만 알 수 있는 사실이어서

동승한 이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상당히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밀폐된 공간 안의 낯선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어색한 기류는 긴 시간 내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 건을 포함해 나는 그녀에게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의 친절을 전했고

나머지 이야기는 곧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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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출한 사진에 이야기는 길다

야간열차에서는 인증샷보다는 에피소드다

가령


옆 사람은 누가 엎어가도 모를 만큼 곤히 잘 자고 있는데

잠귀가 밝고 예민한 사람은 자주 깨고 자주 살핀다

더군다나 깊은 어둠을 뚫고 손전등 하나가 쑥 들어와 여권과 티켓 검사를 하는데

유로 나이트를 타고 가면서 편안한 잠은 나에겐 사치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어느 결에, 따로 잠금장치가 없는 슬라이딩 도어를 슬며시 밀고 들어오는

어둠 속의 음산하고 위험한 윤곽을 가진 낯선 침입자의 몸짓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야간열차에 있을 법하다던 가방 털이를 하려던 모양이었다

나는 차마 말이나 고함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나는 지금 전혀 자고 있지 않다 나는 깨어 있고 야간열차에서도 잠 따위 자지 않는 이상한 승객이다

그것을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고 헛기침 소리를 내는 것으로 격하게 표현했다

다행이었다 아주 대범하고 악랄한 사람은 아니었는지 나의 기척에

그는 조용히 물러났다 내 자리는 창 쪽이었고 짐을 최대한 곁과 품에 두었으니 괜찮았지만

그는 무방비하게 놓여있던 옆 사람의 가방에 손을 대려다 곧 손을 거두고 사라진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보니 해 뜰 기미가 보이는 시간이 되어서도

잠깐 눈을 붙이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따끔거리는 눈을 자주 비비며

다음 날의 해가 떠올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려는 것을 차창 밖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29번의 잠 중 1번의 잠이 로마행 야간열차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건 계산된 잠이었고 피곤한 선택이었지만

앞으로의 28번의 잠은 좀 더 편히 잘 청할 수 있으니 괜찮다


줄곧 바라보던 창 밖 풍경이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 여러분이 탄 기차가 통과하는, 여기는 이탈리아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탈리아는, 로마는, 어쩌면 그렇게 이탈리아고 로마일까


어릴 적부터 오래 사랑했던 도시였지만 가장 불친절하고 아픈 기억이 남은 도시였는데도

로마는 로마고, 트레비 분수에 던진 동전의 예언대로 이렇게 또 올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 출장 다녀온 아빠가 사 온 100여 장의 외국 엽서 중에서

가장 애착을 가지고 동경을 품고 여행을 꿈꾸던 아름다운 폐허, 포로로마노가 있는

여전히 자기만의 유일무이한 색감과 질감과 분위기로 보는 이를 압도하며 온통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곳

이탈리아, 로마로 근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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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꼭 29번의 잠은 시작되었다 다름 아닌 로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