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실패와 상처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얼마 전 추수를 앞둔 들판을 지나다가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분명 내가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인데, 황금빛 벼이삭으로 가득해야 할 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풀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마침 농사를 짓는 지인과 함께 지나가던 길이라 바로 물어봤다.
"논에 웬 풀들이 저렇게 자랐나요?"
"아! 저건 피에요."
피였다. 벼를 심어 놓은 논인지 아니면 피밭인지 모를 정도로, 아무 짝에도 쓸 모 없는 피가 가득 자라고 있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논농사를 지으셨는데, 할아버지의 논에서는 다 자란 피를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논만이 아니라 동네 어느 논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웃자라기 전에 피를 모두 솎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논에는 피가 많이 자란다. 어떤 논은 벼 반 피 반이다.
"피를 미리 꺾어버려야지, 저렇게 피들이 자라면 벼이삭이 잘 안 여물지 않나요?"
대답을 듣고 보니 우문이었지만 나름대로는 꽤나 상식적이고 예리하다고 생각해서 한 질문이었다. 지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지만 나에게 적잖은 깨달음을 주었다.
"아니요. 그냥 거름 한 주먹 더 주면 됩니다. 그 고생하며 피를 꺾을 필요가 없어요."
피를 꺾는 일은 보통 고생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이삭이 패지 않은 벼와 피를 구별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잎마디가 나는 모양을 봐야 하는데 구별하기가 여간 어렵지않다. 전에는 여름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농촌봉사를 많이 했는데, 논에 들어가 피를 꺾으라고 하면 벼를 한 움큼씩 꺾어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피를 꺾는 일은 웬만하면 잘 시키지 않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는 꺾어야지 뽑으면 안 된다. 피와 벼가 함께 자라면서 뿌리가 엉키기 때문이다. 물이 가득한 논에서 피를 뽑았다가는 벼 한 뭉터기가 순식간에 같이 딸려 올라온다. 그러면 그건 참 난처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예 피를 뽑지도 않을뿐더러, 피를 제거하기 위해서 농약조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피가 자라지 않은 논의 쌀은 농협에서 아예 수매를 하지 않는다는데, 농약을 과다하게 사용했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농부들은 피를 꺾고 농약을 주는 대신 차라리 거름을 한 주먹 더 준단다. 그러면 피도 자라지만 벼도 자라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그토록 고생하며 피를 꺾을 필요가 없는 거다. 피는 그냥 놓아 두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그저 벼든 피든 아무튼 잘 키워서 추수하고 난 뒤 묶어두었다가 소에게 여물로 주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도 그렇다. 우리 인생에는 논에 자라는 피와 같은 가라지들이 참 많다. 그건 환경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때때로 그 사람 때문에 괴롭고, 그 일 때문에 절망스럽고, 환경 때문에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그 가라지들을 뽑아내고 제거하려고 애를 쓴다.
'그 사람만 없으면', '그 일만 아니었으면', '이 환경만 피할 수 있으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가라지들은 대부분 쉽게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실 그 사람이, 그 일이, 그 환경이 가라지가 아닌 경우도 많다. 한 십 년 지나고 난 뒤, 오히려 내가 가라지라고 생각했던 그것 때문에 인생이 더 풍요로워졌음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런 환경에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뻔 했을 경우 말이다. 그건 가라지가 아니라 벼이삭이었던 거다. 게다가 설령 그게 진짜 가라지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뽑다가 인생이 왕창 뽑혔을 수 있으니 차라리 안 뽑은 편이 더 나았던 거다.
사소한 습관을 고쳐주려다가 관계가 아주 어그러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작은 잘못을 감추려다가 결국 더 큰 잘못에 빠지는 일도 있고, 환경을 탓하다가 제대로 된 시도 한 번 못해보고 인생을 아주 망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그런 것들에 집중하며 거슬려 하거나 제거하려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가라지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냥 한 편에 놓아 두는 편이 훨씬 낫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상처와 실패들을 자꾸만 '놓아 버리려' 한다. 그러나 놓아 버리지 말고 '놓아 두어야' 한다. 그냥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기 인생을 가꿔야 한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인생의 실수도, 상처도, 실패도, 어그러진 관계도, 전자제품 초기화하듯 처음으로 돌릴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뽑아내고 지워버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들도, 그것들도 함께 가꿔나가야 한다. 한 줌의 노력과 열정을 더해서 말이다.
논의 피도 잘 키우면 소여물이 된다. 추수가 끝난 들판의 피는 아궁이의 불쏘시개로도 적당하다. 당신 인생의 가라지도 그냥 그대로 놓아 두라. '놓아 버리지' 말고 '놓아 두면' 나중에는 오히려 그것이 '해로운 것'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넘어 '이로운 것'으로 변할 수도 있다.
논의 피는 뽑지 않는 것이 좋다. 인생의 가라지도 마찬가지다. 뽑으려고 신경을 쓰고 짜증을 내기보다 오히려 한 움큼의 열정과 노력을 자기 인생에 더 쏟아 붓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 그렇게 잘 가꾸면, 비록 가라지도 자라겠지만, 자기 인생의 곡식알들이 탄탄하게 여물어 황금 물결 일렁이는 금빛 들판을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