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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현 Oct 28. 2015

햇살이 증명하는 것

#009 "누리는 것이 진짜 내 것이다"






얼마나 가졌는지 비교하지 말라.
누리는 것만이 진짜 내 것이다.










한 번은 분당에 사는 지인과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바뀌면서 자신들이 들어와 살려고 하니 집을 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집을 급하게 구했는데 마침 판교에 적당한 아파트가 나서 다행히 때 맞춰 이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사를 하고 나서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가보니 지난번 살던 집보다 새 집이고 더 넓은데다가 집주인이 실내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여놓아 집이 꽤나 훌륭했다. 신혼부부가 살려고 집을 잘 꾸며놓았는데, 갑자기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지시면서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어서 급히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세를 놓은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깨끗한 새 집에 살게 되셨네요? 축하드려요." 하고 말했더니,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요 뭘." 하면서 볼멘 소리를 했다. 나는 무심결에 "누리는 사람이 임자죠." 라고 했다. 내가 말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핵심을 짚는 경우가 있다. 어른들에게는 복잡하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는 어떤 문제들처럼 말이다. 경우에 따라 단순히 생각하면 명쾌한 답을 얻을 수도 있다.


말을 하고 보니 정말 그랬다. 누리는 사람이 임자다.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나중 문제다. 일단은 사는 사람이 임자다. 누리는 사람이 진짜 가진 사람이다. 아무리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을 진짜로 가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소유권이 없다고 의기소침할 일이 아니다. 누리는 것을 고마워할 일이다.


그날, "누리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에 지인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정신 없이 이사를 하면서, '집 없이 쫒겨 다니니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우연히 한 말에 더 위로를 받은 건 오히려 나였다. 나는 그보다 훨씬 가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가치 매김 한다. 무엇보다 가 소유한 것의 금전적인 가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 중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것들 중에는 공짜가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짜라고 해서 귀중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공짜이면서 귀중한 것 중에 하나가 햇살이다. 햇살은 무료로 사용하지만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하다. 오히려 우리가 돈을 주고 사는 것들 중에 햇살보다 더 귀중한 건 하나도 없다. 집도 차도 가방도 심지어 먹고 마시는 것조차 햇살 다음이다. 햇살이 없으면 온 세상은 삽시간에 얼어붙은 암흑에 빠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햇살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 없다. 사람을 그가 가진 것으로 가치 평가해 본다면 이 귀중한 햇살을 누리는 사람들은 누리는 햇살만큼이나 귀중한 사람들이다.


어디  햇살뿐인가?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공기도, 길 가에 피어난 꽃들도, 흐르는 땀을 씻어주는 숲을 돌아나오는 바람도, 지친 마음에 쉼을 주는 밤의 고요함도, 심지어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일 분 일초의 시간조차, 이 모든 것들이 무료다. 값이 없지만 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돈으로 사지 않았어도 훨씬 더 가치 있는, 우리는 이 참으로 귀중한 것들을 언제나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산해진미를 먹고 나서 눌은밥 한 그릇 못 먹었다고 슬퍼할 사람은 없다. 금 한 냥 가지고 있으면서 은 한 돈 없다고 절망할 사람도 없다. 그런데 보다도 더 가치 있고, 산해진미보다도 더 귀한 햇살을 가지고서도 우리는 왜 상심할까? 그런 열등감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햇살마저 즐거움과 고마움으로 누리지 못하고 움츠러든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말이다.










꽃과 나무는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서로가 가진 것을 비교하지 않고, 누려야 할 것들을 마음껏 누린다. 유독 우리 인간들만 서로가 가진 것들을 비교하느라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산다.


이제 비교는 그만 두고 하늘을 바라보라. 따뜻한 햇살을 느껴보라.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햇살이 증명한다. 당신은 이미 너무나 값진 햇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당신이 누리는 햇살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이며, 당신의 인생은 그토록 가치 있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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