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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현 Oct 21. 2015

때로는 계획이 빗나가도 좋다

#007 "인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인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홀라'라는 지역에 우물을 파러 가는 길이었다. 나이로비에서 홀라지역으로 가려면 상당히 위험한 길을 지나야 했다. 함께 동행했던 아프리칸 친구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무조건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밤이 되면 길에서 강도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차를 세우고 물건과 돈을 약탈하는데,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차에 주유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점심식사를 하던 곳에서 차에 기름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주유소가 있는 가장 가까운 마을을 경유해야 했다. 우리나라처럼 마을과 도시가 근거리에 있지 않아, 가장 가까운 마을을 경유하는데만 4시간이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길까지 잘못 들다. 우리는 그렇게 초원 한 가운데서 미아가 되고 말았다.  길도 없는 넓디넓은 초원을 우리그저  방향만 어림잡아 무작정 렸다.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로 막 해가 넘어갈  때쯤, "우와! 저것 봐!"하는 탄성이 들렸다.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보니 거기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기린 가족이 있었다.











국립공원이 아닌 곳에서 살아 있는 야생 기린 가족을 만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 때는 아프리카 전역에 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함께 했던 아프리칸 친구들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고 했다.


기린 가족은 도망가기는커녕 우리를 신기한듯 구경하며 풀을 뜯었다. 오히려 더 어둡기 전에 길을 찾아야하는 우리가 먼저 그들을 떠났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었던 신비롭고 인상적인 만남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고마운 첫 번째 사건이었다.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광경을 보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차도 많이 흔들리고 경황이 없어 좋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마음에 그 광경들을 찍어 둬야 했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 외에는 빛을 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초원길을 달리던 우리는 비포장이긴 하지만 도로를 찾았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갑자기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주저앉았다. 심각한 일이었다. 비포장길을 견디지 못하고 타이어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암담했다. 한밤중에 길도 험한 초원 한가운데서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










나는 군대에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군대에서의 영웅담이 있지만, 그래서 군대 다녀오기를 잘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럴 일이 생겼다.


운전과 안내를 맡은 아프리칸 친구들은 그냥 여기서 밤을 지새우고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의 생각은 달랐다. 여분의 타이어가 있는지부터 물었다. 다행히도 타이어 한 개와 타이어를 갈 수 있는 도구들이 차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운전병 출신의 두 예비역이 있었다.


모든 일행이 차에서 내렸고 타이어 교체 작업이 진행되었다. 일행 모두가 타이어를 교체하는 동안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간에 차가 밀려 위험 천만한 일도 있었지만 타이어는 불과 30여 분 만에 완벽하게 교체되었다. 아프리칸 친구들이 먼저 환호성을 질렀고 우리는 모두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군대에 다녀왔기에 다행인 순간이었다.


타이어가 수리되고 나니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그때 또 한 번의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가 아프리카에 가기 전에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 아프리카는 비행기 삯이 비싸지만, 초원에 가서 밤하늘의 별 한 번만 쳐다보고 와도 그 값을 한다고 말이다. 바로 그 밤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지붕에 가려져 있어 볼 수 없었던 별을 그제야 보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불을 끄고 아프리카 초원의 밤하늘을 바라봤다. 지평선 끝에서 반대편 지평선 끝까지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장관이었다. 내 생애 최고의 하늘을 관람했다. 마치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다. 별을 촘촘히 박아 놓은 공을 반 잘라서 우리 위에 덮어놓은 것처럼... 아! 이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짐이 좀 무겁더라도 별을 찍을 준비를 해왔어야 했다고 몇 번을 후했다.









다행히도 조금을 더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의 주민들이 길을 알려주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밤 12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마을 주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환영해주었다. 우리도 여간 기쁜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둠을 뚫고 무사히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https://youtu.be/_QrCrYTLhHA






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 한구석, 길을 잘못 든 것이 고마워졌다. 길을 잘못 든 덕에 우리가 안전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제대로 된 길로 왔더라면, 밤길에 강도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가 초원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길이 아닌 곳으로 돌아와 더 안전하게 도착하지 않았을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프리칸 친구들이 "정말 그렇다."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잘못든 길에는 안전한 도착 외에도 보너스가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는 만나기 힘든 야생의 기린가족을 만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자동차 타이어가 터진 것도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계획보다 더 환상적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우리의 계획은 그저 길을 따라 목적지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아 목적지에 가는 길에 평생 잊지 못할 인상적인 광경들을 만나게 되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계획이 빗나가도 나쁘지 않다. 우리는 계획이 엇나가 당장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그러나 세상은 훨씬 복잡하다. 그리고 그 복잡함이 오히려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 우리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다.


유대인들이 졸업하는 학생들을 향해 해 주는 말이 있다. "카디마!" 이 말은 "앞을 향하여"라는 뜻의 말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잘 됐을 수도 있고 잘 안 됐을 수도 있다. 소득도 있고 손해도 있다. 업적도 있고 실수도 있다. 하지만  그다음이 중요하다. 좋은 태도는 지금까지의 일이 잘 되었건 잘 안 되었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더 나은 방향을 향해서 말이다. 그러면 나빴던 일도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인생사는 "새옹지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태도는 "전화위복"을 만들어 낸다. 계획이 틀어져 딱히 다른 할 일이 없다면, 내가 세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절망스럽다면 그 절망을 행복으로 바꾸는 태도를 취해보는 건 어떨까?


"앞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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