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살아온 만큼, 내 나이만큼 주부로 살아왔다. 그중 절반은 주부의 삶을 살면서 다양한 일도 하셨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일을 줄이라고 해도 엄마는 집에만 있으면 오히려 병이 난다며 여전히 일을 하신다. 얼마 전 손을 다치셔서 일은 잠시 쉬고 계시지만, 다친 손으로 집안일은 절대 쉬지 않으셨다. (쉬지 못했던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나를 간호하다가 옮은 것인지 엄마가 똑같은 증상으로 앓아 누우셨고, 요즘 재택을 하고 있는 내가 집안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빨래나 청소는 그동안에도 자주 도와드렸던 부분이라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요리를 못하는 내가 대체 무슨 요리를 해야 한단 말인가. 처음에는 계란찜부터 시작했다. 엄마에게 방법을 전달받으면 아바타 요리사가 되어 그대로 만들어내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계란찜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음은 청국장, 김치찌개, 김밥, 어묵탕 등. 난이도는 점점 올라갔지만, 기대 이상으로 맛은 괜찮았다. 다행히 밑반찬과 다양한 종류의 김치가 있어서 찌개나 국만 하나씩 해도 하루는 어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리라는 게 만들고, 먹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면 몇 시간이 훅 지나가버려서, 점심을 먹고 나면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또 널고, 장을 봐야 하는 무한 반복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다. 약 4일간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몸살기가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다. 그때 알았다, 엄마가 왜 짬이 나면 간식을 챙겨 TV 앞에 앉았는지.
주부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이라고 한다. 나는 이번 기회에 주부로 활동하시는 모든 분들을 존경하기로 했다. 엄마는 어떻게 40년의 세월 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했을까. 주부들이 무보수로 이렇게 고된 일을 매일같이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미 한 가정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가 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주부로 사는 건 어때?"
"음. 차라리 거지 같은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지지."
"가장 힘든 게 뭐야?"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래달리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쉬는 시간이 없어.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이라고 하잖아. 그게 정답이야. 남편이 저녁에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그게 그렇게 행복하다. 만약 가족의 삼시 세끼를 모두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나 역시 그 분들을 존경한다."
친구는 회사를 다시 다니고 싶다고 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이놈의 회사만 때려치울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던 친구였다. 그만큼 집안일은 대단한 것이다. 한 사람의 신념을 바꾸어 놓았으니. 난 친구에게 말했다. 주부에게 월급을 준다면 최소 500만 원은 줘야 할 것 같다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 500만 원도 적은 것 같다고. 친구는 내가 철이 들었다며, 웬만하면 결혼을 최대한 미루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결혼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비혼도 고려해보라고 했다.
이제 이 글을 올리고 나면 나는 저녁 차릴 준비를 해야 한다. 원래의 나라면 오늘 도착한 새 책을 읽으며 밀린 드라마도 보고 여유를 즐겼겠지만, 너무나도 읽고 싶은 새 책은 저녁 설거지가 끝난 뒤 차분히 읽어볼 계획이다. 아무래도 엄마의 상태가 나아지는 대로 주부 생활은 은퇴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