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뉴스를 접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듣게 된다. 누가 누구랑 사귀고, 사업에 실패해서 파산신청을 했고, 이혼을 했는데 양육권 분쟁을 한다는 등 조금만 유명세를 치른 사람이라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인터넷 뉴스에 상세히 기술된다. 팩트가 담긴 기사는 대중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의미 있는 매개체가 되지만, 문제는 남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가십거리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내용은 확실한 팩트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널리 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더라' 정도로 퍼지기 시작한 내용은 어느 순간 특정 인물에 대한 '진짜 이미지'로 굳혀버린다. 그렇게 소문의 당사자는 억울하면서도 지옥 같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뒤늦게 진실이 밝혀져 '사실은 그게 아니었더라'라는 내용의 반박 기사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낙인을 찍어버린 이들에게 진실을 해명하는 기사는 크게 의미가 없다. 흔히 말하는 '좌표가 찍히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은 좌표 안에 갇히고 만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그 대상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쓴소리를 할 자유는 모두에게 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타인의 언행에 대해 쓴소리를 한다고 한들 '잘못'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상대를 평가하고 힐난하기 전에 반드시 그 내용이 '진실'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내용에 불특정 다수가 하나, 둘 의견을 덧대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는 행위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정 무리에서 한 사람만 나를 미워해도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한데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이 나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꽂는다면 아무리 멘털이 강한 사람이라도 상처받지 않을 수 없다. 가슴 한구석에 작은 생채기라도 나고 말 테지.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 창을 막았을 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아쉬웠지만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 올바른 처사라며 박수를 쳤다. 악의적인 공격과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퍼다 나르고, 인격을 짓밟는 댓글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숨 막히게 했을까.
몇 해 전, 꽤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대중의 반응이 궁금했던 나는 몇 개의 기사를 골라서 읽어봤다. 정확히 말하면 기사는 스킵하고 댓글을 읽었다. 놀랍게도 기사에 달린 초반 댓글이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 전체 댓글의 향방이 달라졌다. A 신문사의 기사에서는 B가 욕을 먹고 있었고, C 신문사의 기사에서는 D가 가열하게 욕을 먹었다. 댓글의 시작점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다수가 달려가는 곳을 향해 함께 뛰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을 향해 뛰려던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사람들은 누군가 찍은 좌표를 목표 삼아 끊임없이 공격했다.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뛰면 안 된다는 교육이라도 받은 사람들처럼 같은 좌표를 향해 뛰었다. 그렇게 다수의 시선이 한 사람을 몰아세웠다.
얼마 전, 방송작가들끼리 모여 갑질하는 연예인은 꼭 망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태프를 아랫사람 부리듯이 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못된 사람들이 절대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류의 이야기였다. 각자가 겪었던 최악의 출연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 명의 작가가 모든 걸 해탈한 것처럼 말했다.
"살아보니까 어차피 그런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 무너지더라. 내 입 더럽히면서 욕할 필요 없어. 그 인간들 욕할 시간에 선한 사람이 성공하길 빌어주자!"
청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오글거리는 멘트로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뻔한 이야기임에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대화 속 연예인의 언행은 분명 각자가 목격한 '사실'이었지만, 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그의 인격을 일반화시키고 또 널리 퍼트릴 필요는 없기에 우리는 말을 아꼈다. 누군가의 잘못된 언행이 한 번의 실수일 수도 있고, 작은 오해로 인해 악화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진짜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면 내 입으로 응징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스스로 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걸 믿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생산적인 토크로 대화의 흐름을 바꿔버렸다.
만약 우리의 대화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여론몰이를 하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새 부풀려져 소설 같은 이야기로 번져나간다면, 이것 또한 잘못된 좌표 속에 누군가를 가둬버리는 행위이다. 그 행위에 앞장서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낙인을 쉽게 찍는 만큼, 흥미도 쉽게 놓아버린다. 유명인의 경우 작은 사건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세상이지만, 꼬리표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온라인상에 남아있는 자료 때문이지 지속적인 관심 때문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나?',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해프닝조차 잊어버린다.
간혹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나 잘못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며 이불 킥을 하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생각보다 타인은 나에게 무관심하다. 이 역시 '그랬었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대수롭지 않게 잊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제는 타인에게 쉽게 흥미를 잃는 만큼 잘못된 정보를 다시 바로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간혹 잘못된 정보 때문에 타격을 받은 유명인의 경우, 그에 대한 진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대중은 임팩트 있는 첫 소문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진짜 내용이 담긴 해명 기사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채 그대로 잊히고 만다. 소문의 당사자는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할지, 그들이 겪는 고통의 깊이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다수가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힘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그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시시각각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서 개인이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조금 늦더라도 옳은 방향을 향해 걸어야 한다. 다수가 향하는 방향이라도 잘못 찍힌 좌표를 끝없이 쫓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약 그 길 위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돌아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