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상가 J Oct 20. 2022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나

보통의 사람이라면 '엄마'라는 말에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든다. 반사 신경처럼 단어와 함께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뇌가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알아서 눈물이 흐르도록 몸은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다.


10대, 20대 때는 눈물이 흐르는 타이밍이 빈번하지 않았다. 주로 억울하거나 화가 났을 때 대화를 시작하면 눈물이 먼저 흐르기 시작해서 마음을 다잡을 때까지 잠시 숨을 골랐고, 대놓고 울리려는 영화를 볼 때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물론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눈물이 없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수도꼭지처럼 틀면 나오는 울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시도 때도 없이 덜컥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면 웃긴 생각부터 야한 생각까지 별의별 생각을 총동원한다. 어느 순간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싶어서, 또는 감정 조절 못하는 못난 어른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서 눈물을 숨기기 급급하다.


SNS에서 부부가 임신을 했다고 부모님께 고백하는 영상을 보다가 새벽 내내 오열을 한 적도 있고 (본인은 아직 미혼이고 아이를 가져본 적도 없다), (두어 번 인사한 게 전부인) 친구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에 같이 술을 마시다가 엉엉 운 적도 있다. 드라마, 영화를 보다가 우는 건 기본이고, 노래를 듣다가 가사가 너무 와닿아서 우는 일도 허다하다. 이제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같이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잠시 현타가 오기도 한다. 여전히 분노의 감정이 눈물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순간만 건드리지 않으면 이 눈물은 조절이 가능하다.


눈물 댐을 수시로 개방하던 내가 거짓말처럼 눈물을 멈춘 순간을 기억한다.


이미 9년도 넘은 일이다. 한번 잠에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숙면에 취하는 편인데, 그날 새벽은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선잠을 자는 듯 기분도 살짝 떠 있었다. 내가 왜 깊이 잠들지 못하는지 고민하던 찰나, 누군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미 눈물로 얼룩진 엄마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외할머니는 치매를 앓으셨고, 둘째 외삼촌과 함께 지내시다가 요양병원에서 몇 해를 보내셨다. 엄마는 서울에서 일을 하느라 지방에 계신 할머니를 자주 뵈러 가지는 못했지만, 휴일이면 최대한 시간을 내서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엄마는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에게 매번 '내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했다. 할머니는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면서도 엄마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지 못했고, 엄마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나 엄마 딸이잖아.'라고 정답을 알려주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새벽. 잠귀가 어둡던 나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났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과 함께 나를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엄마는 몇 번이고 '엄마'를 부르며 한참을 울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흔들리는 엄마의 어깨를 잡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


할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가는 동안에도,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정이 떨어질 것 같았다. 타인의 이야기,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도 수없이 눈물을 흘리던 내가 가장 슬픈 이 순간 왜 눈물이 나지 않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엄마는 점점 감정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에 다다랐을 때 나는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 아직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외할머니를 다시 뵐 수 없다는 사실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무너지는 엄마 앞에서 나까지 흔들릴 수 없었다. 굳이 그 시간 속에서 슬픔을 참았어야 했나 싶지만, 같이 흔들리는 건 다 같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제도 TV를 보다가 살짝 눈물을 흘렸다. 타인이 느끼는 감정에 동요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눈물은 흔들리는 것뿐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순간의 감정에 힘을 싣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기에 흐르는 눈물이다. 흘러가듯 흔들려도 되는 눈물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강해져야 하는 순간에는 눈물도 흔들리지 않는다는걸.

  

이전 01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