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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Oct 21. 2022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연애를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박원의 '노력'이라는 노랫말처럼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나의 지론은 그러하였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고 최대한 그에 부합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처럼 부질없는 것이 없다.


언니가 운영하는 작은 요리주점에는 손님들이 앉자마자 찾는 것이 있는데 바로 '릴레이 일기장'이다. 손님들은 작은 노트를 펼쳐 앞서 방문했던 손님이 남긴 질문에 답을 하고, 이어서 다음 손님을 위해 질문을 남긴다. 아주 간단하지만 묘한 매력이 넘치는 일기장이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걸 좋아할까 싶었는데 익명으로 남기는 글이다 보니 진짜 속마음을 꺼낸 듯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나중에 책으로 엮어서 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일손을 돕기 위해 가게에 들르면, 나 역시 그 일기장부터 읽어본다. 어떤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방문해 주셨을까,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한 손님이 계실까, 내가 몰래 남긴 질문에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그중 하나의 글이 와닿아서 몇 번을 읽어보았다. 질문을 남긴 사람은 성인이 되고 난 뒤 첫 연애를 시작했는데 어색하고 이상하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이 질문에 달린 답은 꽤 명쾌했다. 


'자기 자신을 너무 의식하시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상대에게 어떤 모습일지를 고민하느라 그런 마음이 드는 걸 수도 있다며 마음의 시선을 자신이 아닌 연인에게 돌려보라고 했다. 내 모습은 잊고 상대에게 푹 빠질 수 있다면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는 완벽한 마무리와 함께.


잠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연애를 할 때 내가 그러했다. 연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 지금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괜히 눈치가 보였고 항상 예쁨을 받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 노력이 얼마나 가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신호등이 켜지면 끝없이 질주하는 스타일이다. 그건 20대 때나 30대 때나 나이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너무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실수를 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내내 속이 불편했다.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단순히 긴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그토록 긴장을 하는 이유는 연인을 향한 사랑이나 설렘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자의식 과잉의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나는 연인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억지로 치장하기 바빴다. 진짜 내 모습이 아닌 거짓된 모습으로.


마음의 시선을 나에게 둘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돌렸어야 했다. 

오직 상대에게 푹 빠질 수 있었어야 했다.


다이어트를 엄청나게 했던 시절, 회식 자리에서도 물만 마시던 나를 보고 메인 피디님이 이런 말을 건넸다.


"이 작가! 살을 왜 이렇게 빼려고 그래?"

"살을 쫙 빼서!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려고요!"

"아니, 이 사람이! 지금도 충분히 매력 있어. 지금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되잖아. 살을 빼고 날씬해져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때의 나는 오직 체중 감량에만 혈안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피디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지금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되잖아'.


내가 그토록 살을 빼려고 했던 이유가 연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긴 했다. 내 외모가 잘 꾸며지고 준비가 되어있어야 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살을 빼고 외모가 예뻐지면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더욱 확장될 것이라는 생각. 결과적으로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난 뒤,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었지만 연애의 질이 나아졌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졌을 뿐, 진정성이 더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탓할 수도 없는 건, 외향의 변화를 이뤄낸 내가 속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상대의 시선을 의식하고 연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외적인 변화를 꾀하기 전에 내면의 변화를 이뤘어야 하지 아닐까.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쓴맛, 매운맛, 신맛, 떫은맛, 단맛... 연애의 모든 맛을 다 맛보았고 그 경험들이 나를 조금은 바꿔놓았다. 이제는 사랑을 할 때 그 사람의 단면을 하나씩 살펴보려 노력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내 마음가짐이 완벽하게 개선되지는 않는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건 아닐지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인과 함께 있는 시간, 그 순간의 대화, 감정, 온도 등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연애의 과정 속에서, 상대의 시선에 얽매이거나 연연하는 그 시간들 속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를 내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님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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