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 폭설

쌓인 눈을 밟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회의를 하다가 풀리지 않는, 끝나지 않는 난제를 두고 무심코 창밖을 바라봤다. 하얀 먼지가 날린다. 먼지가 아닌가? 아, 설마 눈은 아니겠지. 그리고 다시 회의에 집중.


잠시 후, 머릿속에 쌓인 아이디어를 쏟아내다 보니 두통이 엄습한다. 결국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얀 소용돌이가 친다. 아 진짜... 설마 눈은 아니겠지? 집에는 어떻게 가지? 내일 아침부터 촬영인데,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어쩌라는 거니? 퇴근 걱정 하다 보니 회의는 마무리.


이전에 눈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했더라면 다시 한번 이야기하는 꼴이 되겠지만, 나는 눈을 싫어한다. 내리는 눈을 보며 감상에 젖지도 않고, 오직 다음 날 미끄럽고 더러워질 길 걱정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편이다. 물론 아주 잠깐 눈을 좋아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눈이 내리면 순수한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그 당시에는 눈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눈을 좋아했던 게 아니라 눈을 좋아하는 그 사람을 좋아했던 거다. 폴짝폴짝 뛰던 그 사람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퇴근길, 패딩 모자를 쓰고 아직은 소복이 쌓여 미끄럽지 않은 하얀 길을 걷는다. 폭폭 발이 빠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지만, 그 순간에도 내일은 이 길이 얼마나 미끄러워질까, 얼마나 더러워질까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눈 때문이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지하철 안은 이미 만 원이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사람이 원래 없는 시간) 사람이 차고 넘친다. 아마도 차를 모두 버리고 지하철을 이용해 퇴근하는 걸 테지. 이 모든 게 눈 때문이다.


지하철을 내려 버스를 기다린다. 스마일 표시와 함께 잠시 후 도착할 거란 문구가 떠 있길래 '오예'를 속으로 외치며 발을 동동거린다. 잠시 후 도착이라는 표시가 50번은 깜박인 것 같다. 무려 20분을 기다렸을 때, 사람의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달려오는 버스를 마주했다. 그냥 걸어갔으면 이미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을 텐데. 이것도 눈 때문이다.


눈, 너 때문에 오늘 퇴근길이 두 배는 힘들었다. 아마 내일 출근길은 더 지옥일 테지. 듣지도 못할 눈에게 분풀이 겸 씩씩거리며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낯선 존재가 나를 반긴다. 이 추위에 눈이 왔음을 기뻐하며 누군가 만든 눈사람이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준다. 눈 때문이라고, 왜 내렸냐고 그렇게 구박을 했는데, 눈사람을 보는 순간 오늘 하루 몰아치는 일을 정리하고, 회의를 하고, 반격을 하느라 터질 것 같았던 가슴이 잠깐이나마 녹아내렸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라고 말하는 듯 나를 보고 웃는 눈사람 덕분에 작은 위로가 됐다.


눈, 네 덕분에 오늘 피로가 조금은 풀어졌다. 고마워.


2021년생 눈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