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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Apr 09. 2017

제대로, 서울식 선지 해장국

해장국 기행(서울①-강동구 길동사거리 부근ㅣ영화정 해장국

선지는 응고된 짐승의 피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짐승의 피는 신성시 여겨왔습니다. 기르던 가축의 신선한 피는 제사장의 재물로 쓰였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의 원시부족에서는 부족의 중요한 행사에는 동물과 함께 동물의 피를 제물로 쓰는 부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동물의 피는 제사장의 제물뿐만 아니라 식용으로도 널리 먹어왔던 음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동물의 피를 식음 했다는 근거가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 등 옛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맛으로 먹기보다는 보혈 등 약용으로  사용했었지요.


[몸에 혈이 부족하여 얼굴에 혈색이 없는 것을 보한다. 모두 날것으로 마신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나 노루, 사슴의 피 모두를 쓸 수 있다(본초강목). 허로로 피를 토하는 데는 검은 개의 피가 잘 듣는다(수역).]




돼지나 소의 피가 식으면 푸딩처럼 응고가 됩니다. 이렇게 응고된 피를 선지라고 하는데, 선지를 이용한 요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발달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의 선지는 대부분 우거지 등과 함께 넣어 국을 끓입니다. 돼지의 선지는 각종 야채와 양념을 버무려 창자 등에 넣어 삶아먹습니다. 이러한 것을 순대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도 우리의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많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방의 '모르시야'와 영국의 '블랙 푸딩 black pudding)'이란 음식이 한국의 순대와 흡사합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선지를 이용한 음식으로는 해장국과 순댓국이 있습니다. 선지 해장국은 소의 선지를 삶아낸 후 뼈나 사골 등으로 우려낸 육수에 소 부산물 또는 우거지 등을 넣어 끓여냅니다. 순댓국은 돼지뼈를 고은 육수에 돼지피를 넣어 만든 순대와 돼지고기 부산물을 넣어 끓여냅니다.


우리나라에는 순댓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또한 선짓국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선짓국 단일 메뉴만으로 영업을 하는 식당도 더러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단일 메뉴 아닌 다양한 메뉴로 장사를 하는데 비해  단일 메뉴만으로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음식에 분명한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당들 가운데 한 곳이 서울 길동 사거리역 부근에 있는 영화정 해장국 집입니다. 이 집에서는 사골을 우려낸 국물에 된장을 풀고 선지와 우거지를 넣어 끓여냅니다. 서울스타일의 정통 해장국 방식입니다.


이른 아침 영화정 해장국 집을 찾아갑니다. 이 집에서는 따로 주문이 필요치 않습니다. 메뉴가 선지 해장국 단일 메뉴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여 선지나 국물이 더 필요할 때만 ‘많이 주세요’ 하면 됩니다. 먹다가 부족한 듯하여 추가하여도 싫은 내색 없이 더 가져다줍니다. 물론 추가비도 받지 않습니다.


주방 한 켠에서는 연신 국이 끓고 있고, 주인 할머니는 갓 들어온 배추를 다듬고 있습니다. 느긋하게 배추를 다듬고 있는 모습에서 오랜 내공이 저절로 베어납니다. 슥슥 하는 칼질 같지만 그 손놀림은 한치의 오차도 없어 보입니다.

손질하는 배추는 데쳐서 해장국의 밑재료 쓰이는데 해장국에 있어서 선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선지는 특유의 향과 푸석한 맛이 있는데 우거지와 함께 먹으면 맛이 잘 어우러집니다. 더욱이 우거지가 들어가면서 사골의 느끼함이 없어지고 시원하고 개운하며 단맛이 살아납니다. 또한 우거지는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영양학 적으로도 훌륭한 식재료이며,  선지에 다량으로 함유된 철분 성분을 체내에 흡수하는데 도와줌으로써 영양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선지와 우거지는 찰떡궁합이라 할 수밖에요.





푸짐한 선지 해장국 한 그릇과 단촐한 찬, 그리고 양념장이 함께 상에 놓입니다. 국물 한수저로 먼저 입안을 준비하고 선지를 맛 봅니다. 선지 해장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 재료인 선지입니다. 선지는 신선하지 않거나 조리 과정에서 잘못 삶으면 식감뿐만 아니라 쉽게 맛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선짓국을 내놓는 집들은 국에 잡다한 부재료들을 많이 넣습니다.


영화정 해장국은 양은 푸짐하나 들어간 내용물의 가짓수는 단출합니다. 선지, 우거지, 그리고 고명으로 얹어진 파 정도입니다. 국물은 담백합니다. 단 맛이 나는데, 우거지에서 우러난 맛입니다. 선지는 탄력이 있으며 뒷맛에 고소함이 베어 나옵니다. 제대로 삶아내었을 때 나는 맛입니다. 풋배추 우거지는 식감이 살아 있습니다. 적당히 데쳐냈기 때문입니다. 잘 우려낸 육수, 잘 삶아진 선지와 그리고 잘 데쳐낸 풋배추 우거지까지 그야말로 선지 해장국의 삼박자를 갖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단일 메뉴만 갖고서 배짱(?) 장사를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렇듯 자신 있는 배짱 장사는 얼마든지 환영받을만합니다.


늘 그렇지만 소박한 해장국 한 그릇이라도 흡족하게 먹고 나면 세상 다 얻은 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먼 데서 일부러 찾아온 수고로움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한 그릇을 비우는데 시간이 얼마가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말 그대로 '게 눈 감추듯'이 한 그릇을 비워냈습니다. 식당 인근에 친구들 몇이 살고 있는데, 친구들 핑계 삼아서라도 자주 들르고 싶을 정도입니다. 혹여라도 근처를 지나게 되면 아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서울의 동쪽 끝 길동이란 동네에서 맛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먹은 선지 해장국 한 그릇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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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 해장국(서울특별시 강동구 진황도로 43길 9)은 길동 사거리 부근에 있다. 선지 해장국만 하는 전문점으로 인근에서는 해장국 맛집으로 익히 정평이 나있는 곳이다. 영업시간은 새벽 3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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