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산을 오를 때보다 산을 내려올 때가 더 기분이 맑아지고 가벼웠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산에 올랐던’ 때는 목적 지향적이었다
목적지에 여념이 없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거미가 집을 짓고, 애벌레가 부지런히 나뭇잎을 갉아먹고, 새들이 숨바꼭질을 하며 이른 아침의 작고 작은 이슬방울 안에 숲을 담고 있는 정경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산에 오를 때 정상에 다다르지 않아도 시간이 충만하다면 중간 어디쯤 아무데서나 발길을 돌린다
내가 정상에 못 미칠수록 그만큼 여정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어쩌다 정상에 다다라도 큰 의미가 없다
정상은 내 여정의 단지 지나가는 일부분일 뿐
산을 내려갈 때 더 쾌감이 있다
친구와 얘기하고 논 시간처럼 고스란히 산 친구들과도 친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산에 갈 때 등산이라 하지 않고 유산(遊山)이라고 한다
등교가 있으면 하교가 있고 출근이 있으면 퇴근이 있듯이 등산이 있고 하산이 있다
등산, 등교, 출근의 목적지는 서로 다르다
반면 하산, 하교, 퇴근의 죄종 목적지는 집이다
비록 중간 목적지가 있더라도 1루를 거쳐 3루를 지나 홈으로 되돌아온다
산정상에 꼭 올라야한다는 목적의식이 있는 등산보다는 내겐 유산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