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이어트는 포기하겠습니다
몸무게 앞자리가 바뀐 지 일 년 넘었다. 죽어도 지키고자 했던 숫자가 야속하게도 +1 되었다. 움켜쥐려고 했던 욕심이 나이 들면서 지키기 어려워진다. '꼬르륵' 소화기관에 요즘 폭동이 자주 일어난다. 20대 때 예쁨을 위해 포기한 끼니들이 아쉬웠나 보다. 불면증과 함께 새벽에 자주 찾아온다.
새벽 2시나 세시정도, 눈이 떠지고 내 방문을 열면 떡하니 주방이 바로 보인다. 주방 전자레인지 바로 오른쪽에는 위, 아래 두 칸으로 이뤄진 나무장 하나가 있다. 아래는 쟁여놓은 비닐봉지가 가득하고, 윗서랍을 열면 가족 모두의 간식박스가 있다. 짭조름한 감자칩부터 시원한 민트향의 캔디, 국민간식 에이스, 마들렌, 버터도넛, 뻥튀기 등....... 거기서 몇 가지를 자연스럽게 챙겨 온다. 뭐에 홀린 듯 입안으로 쑤셔 넣는다.
처음에는 야간저혈당인가 싶었다. 혈당이 떨어지면 새벽에 당을 찾는다니까 그런 건가 싶었다. 병원에도 가보고 일부러 밤에 먹는 습관 고치려고 찜방에서 자보기도 한다. 한의원까지 갔을 때는 체질이 바뀌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위장병이네요, 보통 뭘 먹어야 잠에 드는 체질이 있는 거 아시죠,. 안 좋은 식습관과 스트레스로 위가 늘어난 것 같아요. 밥은 삼시세끼 꼭 챙겨 먹고 한약 처방하겠습니다"
카톡프로필에 2년 전 사진이 남아있다. 한여름의 일본 오사카에서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나름 날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열심히 살 빼서 유지했던 몸무게는 마음에 들었다. 간혹 찾아오는 기립성저혈압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예쁜 옷을 사면 태가 예뻤던, 청춘의 한가닥은 금방 지나갔다.
사무실에서 오후에 챙겨 먹던 과자 군것질을 저녁으로 삼았다. 때론 오후간식과 저녁 모두 참으며 음식을 제한해 버리는 식단관리를 했다. 간헐적 단식 앱도 설치하고 14시간짜리 단식타이머로 버텼던 순간들이 있다.
결국 그런 방식은 내 체질에 안 맞나 보다. 서른 중반에 불면증의 가면을 쓴 위장병으로 나타났다. 증상이 나타난 초반에는 아등바등 매일 실내자전거 50분 죽어라 뛴다. 낮에 더 절식해 버린다. '점심 많이 먹으면 소화기관이 무리해서 오후업무가 졸려버리니까, 새벽에 과식하느라 고생했잖아~!'라는 핑계로 정말 쪼끔 먹어본다. 정말 죽어라 내 노력으로 성취했는데 부해지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의 예민도가 걸린 문제다.
'짜증 나'란 속마음이 몇 번이나 튀어나왔나,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뒤틀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 전 실내자전거 40분 이상, 퇴근 후 저녁에 50분 이상. 이렇게 혹독한 스파르타방식으로 몸을 괴롭힌 적도 있다. 그건 자학이었다. 업무시간에 피로도가 올라오고 내 삶이 피 패해진다. 너무 지쳐서 결국 손을 놓았다. 내려놓았다고 포기한 건 아니었다.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다. 점심 때는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만큼 먹기도 한다.
'까짓 거 그냥 거울 몇 번 안 보고 사진 몇 번 안 찍으면 되지, 일할 때 깔끔하게 보일 정도만이면 되지 않을까?
이제 곧 마흔이면 아줌마인데 건강 생각해야지, 몸무게가 뭣이 중헌데...!!'
어느 순간 쿨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옷도 필요한 만큼만 사게 된다. 원래 심심할 때 아이쇼핑은 좋아하지만 망설임 빈도가 늘었다고 해야 하나. '지금 내 몸에 안 맞을 것 같은데, 조금 더 고민해 볼까?'라는 참을 인의 시간이 늘어난다. '살 빼면 입어야 할 옷'에 눈독 들이기도 하다가 포기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지갑을 구멍내고 싶진 않아 진달까. 사실 이게 생각보다 괜찮은데......., 안 입을 옷 쓸데없이 사서 탄소배출에 가세하는 것보다 괜찮은데.......?(전 세계 연간 탄소배출량의 10%를 패션산업이 차지한다고 한다)
몇 달 전 보았던 다큐가 떠오른다. '트레이서: 우리가 수거함에 버린 옷은 어디로?' 우리가 버린 옷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하는 다큐다. 차고 넘쳐 처리하지 못하고 동남아로 수출된다. 거기서 사용되는 재활용옷은 일부다. 차고 넘쳐 쓰레기산이 되거나 환경문제를 발생하는 표백과정을 거쳐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한다.
그래, 옷은 그냥 단정하게 입으면 되지 모델할 것도 아니고, 많아서 뭐 해. 지구만 학대하는 거지.
그냥, 마음을 확 내려놓는다
'내려놓음'
한 때 그런 설교를 들은 기억이 난다. 나이 들수록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는데, 그건 하나님께서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신호라고 말이다. 어차피 인간의 욕심은 한도 없는 블랙카드 같아서 채울 수 없다고 말이다
'하나님, 저 아시잖아요. 살찌면 엄청 스트레스받는 거 아시잖아요.. 뺀다고 헬스장에서 러닝 뛰고 집에서 열심히 실내자전거도 타고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저 조금만 살 빼게 도와주세요, 새벽에 흡혈하듯 먹어대는 야식 습관만 어떻게 안될까요, 제 위장병 좀 고쳐주세요~!' 하나님 앞에 이런 투정도 부렸다. 십 대 소녀가 되어 철없는 어리광을 부린 시기는 금방 지나갔다. 내 욕심 내려놓고 새로운 시선을 주시는 것 같다. 몸무게 유지한다고 예민해지고 까칠하게 바라보았던 모든 것을 뒤엎으시려나 싶었다.
'저보다 저를 잘 아시는 주님, 그냥 먹는 재미도 좀 보고, 지구환경 좀 생각하라고 그러시는 거죠?'
투정 부렸던 기도의 응답은 'no(안돼)' 아니면 'wait(기다려)'겠지.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에 하나님은 세 가지 응답을 하신다고 한다. yes(알겠어), no(안돼), wait(기다려).. yes를 받는 입장이 내 기준에서 최고의 응답 같지만 때론 no와 wait 두 가지에서 커다란 은혜를 받는 순간이 있다. 그건 내가 과거에 보지 못했던 시야를 득템 하는 순간이기도 하니까. 7살짜리 어린아이가 보는 시야에서 10살 정도가 파악할 수 있는 시야로 성장했으려나. 마음은 조금씩 넓어지고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 닮아 있겠지?
내려놓고 나니 음식을 보는 시야도 달라진다. 먹기 전에는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먹고 나서 원망스럽게 바뀌어 있는, 심지어 음식을 권한 사람까지도 미워지는 순간도 있었지. 지금은 음미하며 그저 건강한 식단으로 챙기련다. 답답함에 스트레스 풀고 싶을 때는 신상 편의점 간식을 먹고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 보기도 하고 못난이채소박스를 주문하여 야채로 도시락을 싸기도 하면서. 먹기 전이나 후에 모두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오늘의 저녁은 당근-양배추 라페 가득한 토마토파스타였다.
오늘은 어디 한번 이 녀석들에게 편지 한번 써볼까?
토마토야 넌 어디서 왔니, 당근. 양배추야 너희는 어디서 왔니?
먼 거리 여행 오느라 힘들진 않았어, 색감이 먹음직스럽구나.
'송송송송' 사랑 가득한 주부 9단, 엄마의 손길이 거쳐간 것 같아.
한 입에 쏙 들어가게 썰어진 당근-양배추라페야
우리 집의 파스타 담당은 역시 둘째 동생이네,
그녀의 손길로 적셔진 토마토양념이 파스타면이랑 잘 어울린다.
하나님이 사랑의 손길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잖아, 그렇게 너희가 태어났잖아
내 입으로 들어갈 최고의 요리로 탄생시킨 건 엄마동생이 가진 사랑의 손길이네.
누가 하나님형상 아니랄까 봐, 하는 짓도 똑같아요들.
당근-양배추 라페도, 토마토파스타도 푸짐한 건 4인분 가족 모두 푸짐하게 먹으라는 거겠지.
한 그릇만 먹으려다가 결국 프라이팬에서 한 그릇 더 퍼간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너희니까 살찌더라도 사랑해 줄게
그렇게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음식에 대한 애정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