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욕구로 나를 관찰했다.
"0.8센티정도 되네요. 3개월 뒤 추적검사 해볼게요. 5월에 찾아오세요"
2월 말에 일어난 일이다. 몇 년째 변함없던 왼쪽 목의 멍울이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것 같았다. '원래 하나였는데 커지진 않았는데?' 불안한 마음과 최근 일어난 내 몸의 징조들을 떠올려본다. 갑작스럽게 내과에 방문했다.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예약했다. 우리 부서에서 당일 야근을 약속했지만 파토시킨다. 직장동료의 배려있는 눈치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뭉친 지방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요즘 암이 많다고 하는데......, "
나의 우려에 직장동료는 긍정적인 말로 위로한다. 바로 따뜻한 마음의 옆집언니모드로 변신한다.
"지금 안색이 아픈 사람이 아니라 예뻐져서 연애해야 할 안색인데요!"
그녀의 긍정적인 확언에 내 우려는 '피씩'새어 나오는 웃음으로 바뀐다.
불확실한 불안은 해소해야 되니까 점심시간에 바로 직장 근처의 내과로 직행했다. 혈액검사를 하고 초음파는 내일 하자고 한다. 혹시 모르니 목과 복부에 초음파까지 확인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목요일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후다닥 불금오전에 반차를 쓴다. "급한 건 아니니까 다음에 야근하자"는 같은 팀 동료분들의 배려에 한숨 돌리며 나를 관찰한다.
"최근 뾰루지가 나지 않던 부위에 뾰루지가 나고 부딪치지 않았는데 멍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이 몸무게에 나타나지 않던 기립성 저혈압이 생겼어요"
"그러고 보니, 최근 한 달에 생리를 두 번 했어요"
내과 의사 선생님께 말한 증상들을 곰곰이 되짚어 본다. '더 없었나?' 불안한 레이더를 발동해 기억력을 초민감하게 발동한다. 내 몸을 세세히 뜯어보기 시작한다. 바쁜 일상에 관심 없던 내 몸에 주의를 기울인다.
'요즘 금방 숨찬 것 같은데 심장아 괜찮니?'
내 몸에 말을 걸고 눈을 감는다.
아 맞다, 최근 겨울 감기도 아닌데 마른기침이 콜록콜록 튀어나온 적도 있었다. 직장상사분이 그러셨지. "기침소리 안 좋은데 병원 한번 가봐"라고......., 시작이다. 머릿속은 불치병 시나리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일은 쉬어야겠지, 암치료받기 전에 제주도 한 달 살기로 마음 추슬러볼까, 직장에서 사람상대하는 일도 지쳤잖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전담으로 일한 지 올해 5년째다.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차지만 활동지원사와 서비스 이용자를 연결하고 관리하는 일은 항상 한도초과였다. 내가 가진 에너지 고갈량이랄까. 급속도로 닳아버리는 에너지에 금방 무기력해진다. 어머니 나이 또래가 대부분인, 인생선배님들이 대부분인 활동지원사분들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경험을 한 이용자들이다. 규정을 들이밀고 설명하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상상력 발휘하기.
그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도망치고 싶다는 아우성이 자주 울려 퍼졌다. 특히 요즘은 감정선이 스릴 넘치는 세계최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걸까, 그 정도 수준이라 더욱 쉬고 싶었다. 양 극단의 가운데 서서 중재하고 관리해야 하는 사람의 감정기복은, 업무에서 기복이 태도가 되는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다행히 혈액검사에 유소견은 없었다. 그냥 오래된 왼쪽목의 임파선부위에 멍울만 지켜보기로 했다. 몇 년째 보일 듯 말 듯 자리만 엄하게 지키고 있는 그 녀석에게 자릿세라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하루이틀 동안 새로운 경험치를 얻었다. 상상력으로 새로운 인생길을 살아봤다. 오묘하게 든 생각들을 터트린다.
몸속의 일은 정말 모르겠다. 혈액검사에 무소견이어도 스트레스에 안 좋은 식습관, 불면증이 나를 지배하면 금방 암세포가 고삐 풀리듯 날뛰기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대 때보다 30대의 소화기관이 더 안 좋으니까 나쁜 음식을 받아들이는 양상이 다르겠지. 어디 그뿐이랴?
살고자 하는 욕구로 나를 관찰했다. 놓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인생자체를 뜯어본 순간이었다.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기까지 일박이일의 농도가 꽤 짙었다. 그건 나를 관찰한 순간들이 있어서였다. 살기 위해 관찰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면서 다양한 감정이 내 안에 몰아쳤다. '몸에 멍자국이 생기는 건 백혈병 쪽 같은데' '기립성저혈압도 엄청 안 좋은 건데' 머릿속에 인터넷 검색 창이 날아다닌다.
살아있다는 감사까지 나온 걸 보니, 살아있다는 절박함을 몰랐다면 내 몸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거다. 그냥 평범하게 보냈을 직장인의 이틀에 절박함을 담아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이미 불치병 드라마 한 편 찍고 왔다.
'관찰일기를 써야지'라고 다짐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최근의 에피소드였다. 어떤 걸 먼저 관찰하지 고민하고 있었다. 브런치에 올리기로 한 관찰일기의 첫 타자는 뭐가 적절할까? 고민하고 결심했다. 나를 먼저 열심히 관찰하기로. 살아있다는 기쁨을 누리면서. 내일 내 몸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거니까 오늘 마음껏 애정으로 관찰해주려고 한다.
[Gal 5:14, KJV] For all the law is fulfilled in one word, even in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갈5:14, 개역한글]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내 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애정으로 관찰할 수 있다. 바쁘다고 내 몸에 무관심하면 습관으로 자리 잡아버린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무관심해지는 것 같다. 나를 향한 관심이 축척되어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내 몸에 소중한 생명이 담겨있음을 기억하고 '사랑해'라고 말해줘야겠다. 식물에 사랑이 담긴 말을 하면 예쁘게 성장한다는 연구도 있으니까. 내 몸도 똑같겠지. 그냥 형식적으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스러운 심장아, 오늘은 좀 떨리는 거보니 네가 조금 많이 힘들어 보인다. 조금만 더 애써보자. 우리 함께 소중한 생명을 지켜보자' 그래, 디테일하게 러브레터 쓰기로 했다.
오늘은 수전증 있는 내 손을 관찰한다.
**나의 손에게**
'떨림, 설렘' 너에게 어떻게 느껴지니
소녀같은 풋풋함이 느껴지지
오늘은 새가족 모임을 하는데 또 부들부들 떨더라
교회에서 어떤 말을 해야 어색한 분위기가 풀릴까
귀엽게 고민하고 있었잖아.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어떤말로 새가족분들께 전할까, 머리가 새하얘졌지?
그런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 넌 사시나무 떨듯 흔들거리더라.
바로 앞에 높인 종이컵조차도 들기 힘들어했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내 생각이 너에게 묵직하게 전달된 것 같아. 수줍게 러브레터를 전달하는 소녀가 떠오르더라
안 힘드니?
그 책임감을 알고 함께 견뎌주는 넌 연약해보여도 강인해,
무너지지 않고 바들바들 기특하게 견디고 있구나
너의 떨림이 사랑스럽구나
걱정하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너만 느끼는게 아니야
최근 나같이 손떠는 동료를 만났어
소개시켜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