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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했던 뿌리3

그리스도인을 만나다1

by 단팥빵의 소원 Mar 02. 2025

그 아이가 붙여준 '단팥빵'이란 별명이 좋았다.

통통한 볼살에 단팥이 가득 들어있을 것 같다고, 사랑스럽다고, 귀여운 별명을 붙여준 친구 'A양(가명)'이 떠오른다. "마이쭈~~" 혹은 "단팥빵~~" 귀여워 죽겠다는 미소로 찾아와 준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선교지로 가겠다는 전화통화를 마지막으로 내 삶에 그 아이가 사라졌다.


첫 만남은 대학교 기숙사였다.  스무 살 풋풋하고 좋을 나이와 다르게 근심걱정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은 교우관계가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 전학 오고 난 뒤 적응 못하는 '아웃사이더'의 연속이었다. 불안한 마음은 성적으로부터 집중하지 못하고 최악의 고삼시절을 보냈다. 결국 경기도권에 살면서 통학할 수 있는 대학교 커트라인이 아니라 고속버스로 다섯 시간 걸리는 지방의 대학교로 달갑지않은 유학을 갔다.


대학교 기숙사는 낯선 곳이었다. 사람관계가 미숙했기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해야 하는 대학교생활이 무서웠다. 학창 시절 '히키코모리'의 미래를 한창 그리던 나를 겨우지나 도착한 곳은 사람이 바글바글한 4인 1실의 대학교 기숙사였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들어간 대학교 기숙사에서 친구 한 명을 만들었다.


신입생을 배려한 대학교 기숙사는 4인실 중 2명이 1학년이었다. 방에 들어가면 보이는 양쪽에는 제일 먼저 2층침대 두 개가 좌우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A양은 한쪽의 2층침대였고 나는 맞은편의 2층침대였다. 그 아이는 유아교육과, 나는 사회복지과, 전공도 달랐지만 순식간에 친해졌다. 1층침대를 쓰는 언니들은 외박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신입생 둘이 남은 그 공간을 우리 둘의 이야기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2009년부터 2012년 서로의 사진첩에 자주 등장하며 청춘의 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무뚝뚝하고 표현력이 서툰 나와 달리 그 아이는 표현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레트로풍을 좋아했던 그 아이의 패션은 독특하면서도 개성이 가득했다. 신입생 때 같이 가입했던 봉사동아리에서도 그 아이는 그런 매력으로 선배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그 동아리는 사라졌다. '봉사'라는 명분을 외치며 술과 더 가깝기도 했고 사람이 모인 곳이라 사건사고도 많았다. 그만큼 따뜻한 정도 오갔던 기억이 난다. 젊음, 열정, 패기 등 사람을 두려워하던 내가 친구 손잡고 갔던 그 조그만 동아리방 모습이 머릿속에 동동 떠다닌다. 가입신청서를 쓰고 지켜보던 귀여운 CC커플 언니오빠가 던진 장난 한마디 등. '뭐라고 하셨지......?' 그 대화는 기억 안 나지만 어색하면서 정겹던 분위기가 기억난다.


전공단체보다 동아리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추억을 만들었다. 2학년 때는 신입생모집한다고 동아리 홍보차소녀시대의 'oh'를 엉망으로 췄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마음을 줬던 동아리에 A양이 빠져나갔다.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그 친구는 기독교동아리에 가입했다. 민망할 수도 있는 그 아이는 동아리 홍보축제에서 봉사동아리 후배선배동기들에게 믿음을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표현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솔직하던 그 아이는 하나님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솔직했다.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의식함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믿음이 없었다. 힘든 집안상황에 도움 주시는 분이 대학교 근처 교회 목사님이셨다. 아버지 친구분이셨다. 그런 사람들의 도움에는 감사했지만 믿음이 와닿지 않았다. 목사님의 연락으로 잠시 교회에 방문도 하고 청년부 모임도 참석했지만 이질적이었다.


'왜 교회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평온해 보이지?'

질문만 던지고 있었다. 제삼자인 사람들이 평온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걸 보면 자존감이 높아 보였다. 뭔가 단단해 보였다. 청년부모임에서 나와 같은 또래인데 성숙해 보이는 교회사람들이 있었다. 잔잔한 파도 같은 안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불안한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 같았다. 다 잘사는 집에서 사랑받고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을 전하는 A양의 모습은 오히려 이질적이지 않았다. 가깝게 느껴졌다. 그 아이가 겪었던 어려움을 곁에서 듣고 함께 했기 때문일까, 나와 관련없어보이던 '믿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붙잡는'믿음'의 정체가 궁금했다. 왠지 '나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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