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의 차가움을 투영하는 아이
-릴로

kalsavina의 인형이야기

by Kalsavina

밤이 늦었지만, 릴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자야 할 것 같다. 밤이 계속 달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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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늘 이야기했듯, 나는 따스하고 여린 분위기의 자그마한 꼬맹이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인연이란 좀체로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인형과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어찌된 영문인지, 평소부터 늘 가지고 싶어했던 인형을 파는 샵의 홈페이지가 리뉴얼 중이었는데, 기간이 차일피일 늦어지는 데 화가 난 나는 웹서핑을 하던 중 몇 달 전 잠시 반했다가 잊고 있던 아이를 발견했다. 그 당시 진지하게 구입을 고려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던 아이였다.

몹시 자신에게 화가 난 상태로 나는 릴로를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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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로는 처음부터 따스한 느낌을 주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로에게 무척 공을 들였다.

릴로라는 이름은 본래는 내가 좋아하는 빨강머리의 영국 모델 릴리 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얼마 전, 한밤중에 릴로의 옷을 갈아입히다가 문득 릴로의 생일을 떠올렸었다. 4월생. 에이프릴(April)

릴로의 타입명은 돌로레스(Dolores)다.

에이프릴과 돌로레스에서 한 글자씩 따 오면 릴로가 된다. 물론 이 경우 영어 철자는 릴리 콜의 이름을 땄을 때와 달라지겠지만. 어느 쪽이든 릴로라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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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로의 체형이 다른 usd사이즈의 구체관절인형과 달라서, 옷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체형이 아니었다.

그 결과, 릴로는 그 어떤 인형보다 내가 만든 옷을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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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살면서 아름답지 못한 것들과 마주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줄기차게, 인간을 함부로 대하는 부류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마음을 다치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한없이 차가워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차가워진 자신을 발견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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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차가워진 자신을 발견했을 때,

따스함에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차가움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될 때가 있다. 필요에 해서든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든 간에.

그럴 때 자신의 차가움을 한없이 투영하는 존재를 발견한다.

나의 차가움을 한없이 투영하는 존재.

그래서 나는, 나를 향해 웃어주지 않는 뾰루퉁한 릴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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