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정신없는 일상을 살아낸다는 건, 언뜻 생각하기에는 보람차게 살아간다는 오해를 종종 사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대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보람차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지?'라는 회의가 아닐까. 적어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 신세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그러나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도 때로는 쳇바퀴를 떠나 자유 속에 내던져지는 때가 있다. 해고를 당해 백수가 되었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을 볶던 아이들이 여행을 가건, 혹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자격증 시험(공무원 시험을 포함한)에 합격해 잠시나마 공부의 압박에서 벗어났건 간에 말이다. 뭐 어떤 이유로든 우리에게 마음껏 쓸 시간이 주어지는 때가 더러 찾아온다. (물론 돈이 같이 따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이런 시기를 맞이했을 때,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거라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야 해외로 떠나겠지. 혹은 국내 어디든 좋으니 하다못해 제주도라도 가겠지. 하지만 모두가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또한 모처럼 주어진 시간을 꼭 여행에만 쓰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어쩌다 보니, 내게는 이러한 시간들이 꽤 있었다. 너무나 아깝고 소중해서 뭘 해야 좋을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흘려보내는 자투리 시간들 말이다. 물론 인형 매니아가 된 이후 (시작은 소다를 들인 시점으로 해 두자)나의 자투리 시간들은 더 이상 방황과 회의로 점철된 시간들이 아니었다.
비싼 인형 드레스를 살 돈이 없어 낡은 옷을 뜯어 옷을 만들고,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어쩌다 여행을 떠날 때면 인형을 가지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오랫동안 망설였으며, 소설동창회 이후로 거의 활동하지 않았던 동호회 활동을 다시 시작했고, 돌프리마켓과 같은 인형 관련 행사에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타고난 성격 탓에 늘 따라다니던 번민과 회의에 찬 일상은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만큼 쓰고 씁쓸했지만, 다시 만난 인형들과의 일상은 차츰 유지방과 당분이 가미된 카페라떼같은 맛으로 바뀌어 갔다. 참, '아이스'라는 말을 생략했다. 나는 한겨울이 아니면 거의 뜨거운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전에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살면서 긴 터널을 지나는 시기는 분명히 있고, 그 시기는 지푸라기든 뭐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붙잡고 의지하면서 버텨내야 하는 거라고.
설령 그 대상이 인형이라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터널 안에서의 일상이 그저 암흑 속을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일상은 꽃처럼 아름답게 수놓아져야 하고, 꿀 같은 달콤함도 곁들여져야 한다.
때로는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가 아닌 달콤한 바닐라 라떼를 마실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인형들이 들려주는 달콤한 속삭임을, 나는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사실은 내게 있어 어느 날 찾아온 소중한 내 인형들이야말로 달콤한 속삭임 그 자체라고 느끼기도 한다.
햇볕이 따스한 날은 가방에 인형을 담고 공원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예쁜 사진을 찍은 후 커피숍에 가서 가장 싼 커피를 주문하고, 인형과 함께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음미해 본다.
그날 하루분의 몫으로 준비된 상처와 눈물은 오고가는 발걸음에 털어 버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