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우 님과 매주 월, 수, 금 옆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으면서 더 가까워졌어요. 사장이 또 변덕을 부려서 신상품 개발 보고내용 갈아엎고 기존 상품 업그레이드 방안을 짜느라 제가 수업을 빠지게 되었을 때도 지우 님은 제가 중요한 수업 내용을 놓치지 않게 절 살뜰히 챙겨줬어요.
유하씨 걱정 마요. 제가 필기 이따 찍어서 보내줄게요.
진짜요? 너무 고마워요.
아니에요. 사장이 악질이라 고생 많네요. 힘내요!
필기를 받아보니 수업 30분 전부터 학원 스터디룸에서 복습을 하는 모범생 지우 님 답게, 핵심 내용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어요. 지우 님은 ‘드림 셀러 초보자는 우선 꾸고 싶은 꿈 단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가 강의의 핵심이라며 강조 표시를 해 두었죠. 자신의 꿈으로 덕을 볼 사람을 고시를 앞둔 수험생, 성과를 내야 하는 신임 임명 사장,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 건물을 사러 땅을 보러 다니는 사람 등 덕 볼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그들을 위해 꾸어야 할 꿈 하나에 집중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전 한창 자기 사업 상품 개발로 바쁜 와중에 저도 잘 챙겨주는 지우 님이 고마웠죠.
드림아카데미 과정 3주차 월요일. 저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죠. 그날은 낮부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세차게 퍼부었어요. 전 다 젖은 바지 아랫단, 양말 때문에 찝찝해하면서 강의실에 앉았죠. 그런데 웬일로 일찍 와서 제 자리 맡아주던 지우 님이 보이지가 않았어요. 왜 안 오냐는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죠. 지우 님은 2교시 직전 쉬는 시간에 급히 들어왔는데 낯빛이 먹구름보다 더 어두웠어요. 저한테 늦은 사정을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오늘 일이 너무 안 풀리네요. 어제 꾼 흉몽 때문인 거 같기도 하구요.
흉몽이요?
어제 꿈속에서 남편이랑 캠핑장에 갔는데요, 옆 텐트에 반려견이랑 같이 온 가족이 있길래 저희가 판매 준비 중인 장난감 좀 드리려고 트렁크를 열었어요. 그런데 돼지 한 마리가 장난감 샘플 더미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다 더럽히고 있는 거예요. 쫓으려고 안아 올렸더니 걔가 발로 제 코를 콱! 할퀴었어요.
헉, 돼지한테 공격당하는 거,
맞아요. 큰 악재가 닥치는 꿈.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에요. 꿈에서 제가 소리 지르니까 남편이 놀라서 뛰어왔는데, 돼지가 도망가면서 남편 팔 할퀴어서 남편까지 다쳤어요.
아이고······
정말 이 꿈 꾼 다음부터 계속 나쁜 일이 일어나네요.
지우 님은 점심에 고등어를 굽다가 깜빡 잊고 태웠고, 오후에 카페에선 아이스라테를 시켰는데 음료가 이가 나간 유리잔에 나왔고, 학원 오는 길엔 앞쪽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차가 막혔다고 했어요. 이러다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이라 했죠. 전 애써 위로했어요.
액땜 많이 하셨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예요.
······그렇겠죠?
지우 님은 계속 불안해보였어요. 수요일에 만난 지우 님은 얼굴이 더 어두워져 있었죠.
공장에서 샘플 장난감을 받았는데요, 몇몇 제품 안에 계약했던 솜 대신 더 싸고 품질이 떨어지는 다른 솜이 들어가 있었어요.
와 사기꾼이네요.
솜 공급업체에 먼저 클레임을 걸었는데, 어쨌든 철저히 검품하려면 출고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어요.
지우 님은 너무 괴로워보였어요.
얼른 수익이 생겨야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있는데······ 남편이랑 회사도 같이 때려치우고 시작한 사업이에요. 혹시 다른 자재에도 문제 있을까 봐 걱정이에요.
지우 님은 모든 불운의 원인이 자기가 꾼 흉몽이라면서 자책했죠.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 벌 받나 봐요. 괜히 이런 미신에 홀려서······
전 지우 님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모범생 지우 님이 강의에도 내내 집중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뭔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쉬는 시간에 지우 님이 큰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했죠.
저 이 꿈 얼른 팔아야겠어요.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도사님 중에 흉몽을 사시는 분이 있더라구요.
그런 도사님도 있어요?
네. 굿으로 나쁜 기운을 빼실 줄 아신대요.
얼마에 파시게요?
백만 원이요.
네? 그렇게 비싸게요?
또 남편한테 안 좋은 일 일어날까 봐 불안해 죽겠어요.
지우 님은 할퀴고, 피가 나고, 돼지가 달아나는 등 흉한 정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 가격은 되어야 도사님도 꿈을 사주실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전 그런 말도 안 되는 도사님이 있단 걸 믿는 지우 님도 불쌍하지만, 한편으론 돈에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도 몇 번 액땜이 되었으니 흉몽의 기세도 한풀 꺾이지 않았을까 싶었죠.
눈앞에 백만 원을 벌 기회가 놓여 있었어요. 드림 셀러가 되어 꿈을 팔기까지,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이 더 걸릴지 몰랐지만.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꿈을 기다리기보다 당장 통장에 꽂힐 돈을 놓치지 않는 게 더 현명한 길일 거란 생각이 퍼뜩 들었죠. 강의가 끝나고, 전 지우 님한테 제안했어요.
지우 님, 그 꿈 제가 살게요. 저한테 파세요.
네? 안 돼요. 유하 님한테 안 좋은 일 생기면 어떡해요.
전 제 욕망을 얄팍한 선의로 포장했어요.
지우 님 그 동안 저 많이 도와줬잖아요. 저도 돕고 싶어서 그래요.
맘은 고마운데 그렇다고 나쁜 걸 유하 님한테 넘기면 제 맘이 안 편할 것 같은데요.
아시잖아요, 저 돼지꿈도 수업 듣기 전에 이미 한 번 꿔 본 거. 금방 길몽 꿔서 그 흉몽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지우 님도 제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눈치였지만 제안은 계속 거절했어요. 전 수차례 설득해서 겨우 지우 님의 마음을 열었죠. 그 자리에서 백만 원을 이체 받았어요. 지우 님은 복잡한 표정으로 절 보면서 말했어요.
진짜 고맙고 미안해요 유하 님! 저 오늘이라도 좋은 꿈 꾸면 유하 님한테 당장 공짜로 드릴게요!
집에 돌아온 전 흉몽도 샀겠다, 얼른 좋은 꿈을 꾸어야 된다는 압박을 느꼈어요. 돼지가 나오는 온갖 콘텐츠를 다 봤죠. 다이뤄드림님이 배포해주신 껄끄러운 돼지 영상, 각종 돼지 사진, 돼지 캐릭터 등등. 그런데 그 날, 전 아무 꿈도 못 꾸었어요.
그 꿈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꿈을 산 날 이후, 저한테 크고 작은 불운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어요. 우선 사장이 뜬금없이 상품 개발안은 접고 애견호텔과 함께 진행할 만한 신사업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죠. 사실 이렇게 보고서가 엎어지는 일은 흔했지만 괜히 그 꿈을 사서 벌어진 일처럼 느껴졌죠. 퇴근길에 지하철을 눈앞에서 놓친 것도, 집 근처 골목길에서 밟은 껌이 운동화에 눌어붙은 것도, 인터넷에서 옷을 주문하려는데 하필 맞는 사이즈만 품절된 것도, 다 흉몽이 끌어온 난데없는 불운 같았어요. 길몽을 꾸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날로 심해졌죠. 그런데 1주일 동안 돼지는커녕 개도 꿈에 안 나오더라구요.
이상하게 지우 님도 꿈을 판 날 이후로 쭉 연락이 없었어요. 지금 1주일 째 제 메시지를 안 읽고 있어요. 결석 한 번 안하던 지우 님이었는데 지난 금요일과 월요일, 오늘까지 3번이나 결석을 했고요. 전 혼자 수업을 듣고 나오면서 지우 님에게 정말 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반, 지우 님이 혹시 제가 꿈을 되팔려고 할 까봐 일부러 절 피하고 있다는 불길한 의심 반으로 마음이 복잡했죠. 어떻게든 나쁜 생각을 떨치고 잘 지내려는데 어제 전화가 왔어요. 엄마였죠.
유하야 회사니?
드림아카데미 이야기는 엄마한텐 비밀이었어요. 전 거짓말을 했죠.
응. 야근하다 바람 쐬러 나왔지. 저녁은?
이제 먹는다. 아휴, 아까 감자 쪄먹으려다 집에 불 날 뻔했어.
뭐라고?!
전 가슴이 철렁했어요.
티비 보다 불 올려둔 걸 깜빡했지 뭐니.
다치진 않았고?
응 괜찮아. 세상에. 냄비 새까맣게 다 탔어.
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흉몽 기운이 엄마한테까지 뻗쳤나?
전 당장 이 꿈을 지우 님이 말한 도사님께 되팔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때문에 가족한테 나쁜 일이 생기면 전 저를 용서 못 할 것 같았거든요. 검색해보니 정말 흉몽을 사는 도사님이 있어요. 사기꾼인지 사이비 종교 교주인지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도사님께 상담을 신청하고 하소연을 하니 도사님이 말씀하셨어요.
요새 그 드림아카데미 다니는 분들이 나한테 흉몽을 많이 팔더라고. 아가씨, 도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냐. 신령님의 간택을 받아야만 되는 거라고. 사기꾼들 말 믿지 말아요.
도사님께 꿈 값으로 오십만 원을 불러볼까도 잠시 흔들렸는데, 원래 백만 원 하던 꿈을 깎아서 팔았다가 또 무슨 재수 없는 일을 당할지 모르지 겁이 났어요. 그래서 상담 후 바로 도사님께 꿈을 사주시는 값으로 백만 원을 그대로 드렸죠. 그리고 전 돼지 꿈을 꾸는 공부에서 그날로 손을 뗐어요.
자, 보희 님, 전 솔직하게 다 털어놨어요. 이젠 보희 님이 저한테 솔직하게 답해줄 차례에요. 딱 두 가지만 답해 주세요.
정말 그 오줌 꿈 꾼 거 맞아요? 그리고 당신 동생은 그 꿈 산 덕에 여왕 된 거 맞아요? 꿈 내용도, 꿈 거래 내용도 옛날 사람들이 당신네 왕족을 신격화하기 위해 지어낸 신화 아니에요? 만약 진짜 꿈 덕이라면 그 이후로 무수한 꿈 팔이 의뢰를 받았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역사책에 안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