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셀러> 2부
꿈 팔이에 관한 흑빛 상상
저는 마음이 훅 끌려서 전문 드림 셀러 양성을 위해 주 3일로 진행되는 드림아카데미 4주 과정까지 살펴봤어요. 한 기수 당 100명을 받았는데, 이제까지 900명의 드림 셀러가 양성되었고, 10기 모집 마감이 코앞이더라구요. ‘자면서 돈 버는 혁신적인 방법’, ‘우수 드림 셀러 연봉 1억에 도전하세요’, ‘밤에 꾼 꿈으로 아침부터 돈 벌기’처럼 마음을 붕 뜨게 하는 문구가 널려 있었어요.
드림아카데미 커리큘럼도 봤는데 뭐랄까, 미신과 과학의 퓨전 같았어요. 역술인의 꿈 해몽에, 수면학자들의 꿈 패턴분석까지 고루 있더라구요. 주차별 시간표도 나름 체계적이었죠.
1주 차 - 좋은 꿈의 종류와 좋은 꿈을 꾸기 위한 마음 다스리기
2주 차 - 꾸고 싶은 좋은 꿈을 정확하게 꾸는 방법 (이미지 연상 트레이닝)
3주 차 - 대박 꿈을 꾸게 해 주는 숙면 요법
4주 차 - 실전 훈련
등록비는 40만 원. 토익 학원 등록비와 비슷했어요. 책임감 있는 드림셀러 양성을 위해 결석은 3번까지 허용하며, 4번 이상 결석 시 사정과 관계없이 무조건 중도 탈락 처리되고, 재등록할 경우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이수해야 한다는 엄격한 수강 규정이 강조되어 있었죠. 하지만 이 과정을 이수하면 드림 마켓에 정식 드림 셀러로 등록해 거래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어요. 전 강의 내용이 궁금해서 맛보기 강의를 클릭해봤어요. 드림아카데미 1기 수료생이자 랭킹 2위 파워 드림 셀러인 ‘다이뤄드림’의 강의였죠. 세련된 옷차림의 할머니가 화면에 등장했어요. 중간에 이런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원하는 꿈을 매번 꿀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저 같은 탑2 파워 드림 셀러라고 예외는 없죠. 전 매일 잠들기 전에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을 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복을 주고 싶다는 기도를 간절히 드려요. 체계적인 훈련에 진심을 더할 때에야 비로소 길몽이 완성되거든요. 여러분도 제가 대박 냈던 ‘황금 돼지우리 안에 뒹굴면서 돼지 변을 온몸에 묻히는 꿈’ 같은 꿈 충분히 꿀 수 있어요. 이런 인생 역전 꿈, 하나에 수천만 원 하는 거 아시죠?
갑자기 부르르르, 폰이 울리고 수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람을 보는 제 모습이 그려졌어요. 상상만해도 설렜죠. 하지만 전 따질 건 확실히 따지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사람이거든요. 길몽으로 덕을 보는 게 가능한지, 직접 꿈 구매자가 되어 실험을 해보기로 했어요.
이왕이면 탑 쓰리 드림 셀러의 꿈으로 효력 테스트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죠. 전 꿈 가격 필터를 ‘2만 원 이하’로 설정해서 꿈을 훑었어요. 드림아카데미 9기 수료생, ‘성공드림’의 꿈이 눈에 들어왔어요. 꿈 내용은 이랬죠.
제가 꿈에서 마트에 갔는데, 펜스가 쳐진 애완동물 구역 속 돼지우리 안에 새끼돼지들이 모여 있었어요. 그 중에 파란 날개옷을 입은 통통한 새끼돼지가 제일 눈에 띄게 귀엽더라구요. 전 그 돼지를 사서 집에 데려왔어요. 이름은 날개 윙(wing)에서 따 와서 윙스라고 지었구요. “윙스!” 하면 “꾸엑!” 답하면서 달려오는 게 진짜 귀여웠어요.
첨부된 전문 역술인 꿈 해몽 코멘트를 보니 ‘시장에서 새끼돼지를 사서 집으로 들여오는 꿈’은 큰 행운이 굴러들어 오는 꿈이었어요. 성공드림은 파격 할인을 한다며 덧붙였어요.
최소 삼만 원은 되는 꿈이지만, 반값, 만 오천 원에 드립니다(사실 저도 꿈에서 윙스를 50% 할인받고 샀어요ㅎㅎ). 토실이 윙스 데려가시고 덕 보세요!
전 바로 꿈을 샀어요. 삼만 원으로 얼마만큼의 덕을 볼지 기대됐죠. 이번엔 덕이 엉뚱한 데로 새지 않게, 곧바로 집 앞 편의점에 가서 로또를 샀어요. 자동 방식으로 다섯 줄을 응모했죠.
응모한 주는 정말 정신 없이 바빴어요. 당첨 발표일인 토요일까지 출근해서 일을 했으니까요. 사장이 갑자기 사업방향을 틀어서 회사가 비상상황이었거든요. 제가 반려견 관련 회사에 다니는데요, 갑자기 사장이 반려견과 사람을 동시에 타겟팅하는 기획상품 사업을 하자고 했어요. 한 달 동안 쓴 반려견 장난감 아이템 발굴 보고서가 쓸모없어진 순간이었죠. 수정 통보를 듣고 재경이랑 메신저로 욕을 퍼부었어요.
이게 말이 돼? 한 달 동안 뻘짓한 거잖아 우리.
하, 완전 짜증.
얼른 튀자. 여긴 답이 없다.
저희 둘은 ‘반려견과 가족 모두 행복해지는 1+1 상품 개발안’ 정리를 맡았어요. 개 껌과 사람 껌을 묶은 ‘투게더 껌 세트’, 물어뜯음 방지 패드와 1인용 가죽 소파를 합친 ‘프리미엄 리빙 세트’ 같은 걸 만들었죠. 저녁은 컵라면으로 대충 때웠어요.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해도 얼마 못 버는데. 간간히 수천만 원 하는 드림 셀러들의 꿈 값이 떠올라서 자괴감이 들었죠. 소중한 주말을 뺏겨가며 한 달을 일해도 파워 드림 셀러의 단 하루 치 꿈 값에도 못 미치는 거니까요. 마무리 회의로 문서 정리를 끝내고 나오니까 밤 10시였어요. 전 바로 로또 당첨 번호를 검색했어요. 근데 웬걸. 4등에 당첨 됐어요. 만 오천 원짜리 꿈을 사서 오만 원을 번 거예요. 횡재였죠.
퇴근하고 오면서 바로 성공드림님한테 거래 후기를 남겼어요.
윙스 꿈 덕에 로또 4등 당첨됐어요! 짱짱 감사해요^^
로그인 상태였는지 성공드림님의 댓글이 바로 달렸어요.
오!!! 완전 뿌듯하네요. 좋은 후기 감사하구 자주 찾아주세요!
‘덕 본 사람’이 되고 나니 꿈의 효능에 확신이 생겼어요. 본격적으로 드림 셀러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죠. 전 바로 10기 드림아카데미 과정에 등록했어요. 꿈을 잘 팔면 나중엔 사장님 연봉도 가볍게 이길 거 같았어요. ID도 고심해서 정했어요. ‘드림포리치(dream4rich)’. 일이 잘 풀려서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싶었어요.
월요일 저녁, 사장이 수정 보고서에 흡족해 했다며 팀장님이 기분 좋게 저녁 회식을 하자셨지만, 전 감기 기운이 있다고 둘러대고 일찍 퇴근했어요. 그 날은 드림아카데미 10기 첫 수업 날이었거든요. 회사 앞 로또 판매점에서 당첨금 5만 원을 타고, 째지는 기분으로 학원에 갔죠.
드림 아카데미는 외진 곳에 있었어요. 겉은 허름해 보였지만, 실내는 꽤 현대적이더라구요. 로비엔 10기 신입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북적였어요. 나이대는 다양하더라구요. 20대 대학생부터 80대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까지. 로비 왼쪽 부스에선 숙면 침구 세트와 수면 리듬 안정화제 같은 것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어요.
전 강의실 중간쯤 앉았어요. 첫 강사는 탑2 파워 드림 셀러, 다이뤄드림님이었죠. 딱 부잣집 할머니 스타일이었어요. 신발과 스카프에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더라구요. 누가 뒤에서 “저 스카프 100만원 짜리야”라며 수군댔죠. 부자 아우라를 풍기면서, 다이뤄드림님이 말했어요.
여러분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농사가 뭔지 아세요? 자식 농사? 하하. 저한텐 꿈 농사예요. 자식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농사거든요. 어제도 내 돼지꿈 산 아버님이 그러데요? 산 것만으로도 이미 복이 굴러들어 오는 것 같다고. 그 분 덕에 제가 더 복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다이뤄드림님의 꿈 덕을 본 사람은 정말 많더라구요. 다이뤄드림님은 벅찬 눈빛으로 덕 본 사람들을 쭉 나열했어요. 온몸에 돼지 똥이 묻는 꿈을 산 남자는 사업 매출이 1달 만에 2배 올랐고, 돼지 한 마리가 보고서를 물고 사무실에서 졸졸 따라오는 꿈을 산 여자는 상무로 승진했고, 용이 침대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잠자는 꿈을 산 여자는 시험관시술 5번 끝에 임신을 했다나요.
저도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덕 본 사람들의 후기를 뿌듯하게 바라보며 강단에 선 제 미래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돼지꿈은 한 번 꿔 본 사람이 더 잘 꾸더라는 말에 다른 수강생들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자부심도 들었죠.
다이뤄드림님의 첫 강의는 길몽의 등급에 관한 것이었어요. 등급을 이렇게 자세하게 나누어 설명해 주셨죠.
우선, 꿈에 나온 돼지의 색깔별로 길함의 ‘클라쓰’가 다릅니다. 먼저 1등급은 황금돼지. 살아 있는 황금색 돼지가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보통 황금색 돼지 저금통이 꿈에 나오죠. 2등급은 분홍 돼지. 여러분이 제일 흔하게 보시는 색이요. 3등급은 파랑 돼지. 특히 ‘파란 돼지를 꼭 껴안는 꿈’은 길한 태몽이에요. 자식이 유명한 석학자로 출세하는 꿈이라 청담동 사모님들이 웃돈을 주고 사가시기도 하죠. 파란 돼지 꿈은 드림 마켓에 등록되자마자 팔리는 경우가 많아요. 4등급은 노란 돼지. 그 왜, 누리끼리한 제사상에 올라가는 죽은 돼지머리도 여기에 해당해요. 마지막 5등급은 흑돼지. 색깔로 따지자면 멧돼지도 여기 해당하죠. 멧돼지는 좀 주의해야 해요. 행운이랑 불운을 다 갖고 있거든요. 여러분이 꿈에서 멧돼지를 이기면 길몽, 지면 흉몽이 돼요. 예로 꿈에서 멧돼지를 올라타고 산속을 신나게 달린다든가, 멧돼지를 죽여서 그 고기를 먹으면 길몽, 멧돼지한테 쫓기거나 멧돼지가 집에 들어와서 집을 어지럽히면 흉몽인 셈이죠.
검은 뿔테안경을 낀 한 남자 수강생이 반문했어요.
선생님, 어떤 역술인은 멧돼지가 정면으로 달려와서 들이받는 꿈을 승진 징조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보기에 이건 멧돼지한테 지는 경우인데, 왜 길몽으로 해석되는 거죠?
다이뤄드림님이 답했어요.
좋은 질문이에요. 이기고 지는 건 꿈의 전체적인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멧돼지가 들이받았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도 안 다쳤다, 멀쩡했다, 그러면 길몽이 되는 거죠.
전 돼지꿈의 내용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나뉘는 줄은 몰랐어요. 돼지의 행동에도 등급이 있더라고요.
꿈에서 보이는 돼지의 행동은 ‘발을 문다’, ‘품으로 뛰어든다’, ‘길을 막는다’, ‘떼 지어 몰려온다’ 순으로 좋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돼지우리에서 돼지똥과 함께 뒹군다’예요. 여러분 모두 ‘돼지, 똥, 뒹군다’를 자기 전에 3번씩 되뇌고 주무세요. 이 영상도 꼭 보시구요.
다이뤄드림님이 보여준 영상에서 돼지들은 우리 안에서 서로 부대끼고 있었어요. 흙 묻은 돼지들이 서로 더 많이 먹으려고 꽥꽥 싸우는 모습이 솔직히 좀 역겹더라구요. 이런 영상의 꿈을 꾸겠다고 이렇게 모여 있는 게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솔직히. 어떤 사람은 뒤에서 큭큭대면서 실소를 감추지 못했거든요. 다이뤄드림님은 자꾸 보다보면 돼지가 귀엽게 느껴질 거라면서 이 영상을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번, 그리고 잠들기 직전에 꼭 1분 이상 보면서 돼지꿈 꿀 확률을 높이라고 강조했죠.
전 확률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로또 같은 건 제가 찍은 숫자가 나올 확률을 제가 높일 방법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우연한 확률에 기대느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확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주체적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다 싶었어요. 소액을 묻어놓고 오래 기다리는 ‘복리의 마법’을 느껴라, 이런 말보다 더 합리적으로 느껴졌죠. 천천히 늙은 부자가 되느니, 젊은 벼락부자로 조기은퇴를 하고 싶었어요.
1시간 반 정도 강의를 듣고, 15분 간 쉬었어요.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한 여자분이 뭔가 잃어버린 듯 가방을 뒤적이더라구요. 여자의 책상 위엔 보조 배터리의 케이블 선만 책상 위에 나뒹굴고 있었어요. 도와주고 싶어졌죠.
배터리 필요하세요?
네. 혹시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놓고 왔는지 안 보이네요.
배터리를 건넸는데 붙어 있는 강아지 스티커를 보고 여자가 웃더라고요.
이 스티커 너무 귀엽네요.
아, 저희 회사에서 만든 거예요. 개 이름표 목걸이랑 세트로 팔죠.
어? 저도 반려견 장난감 사업 해요.
여자의 이름은 신지우. 퇴사 후 남편과 반려견 장난감 사업 창업 준비 중이라 했어요. 저랑 비슷한 나이인데, 자기 사업을 한다고 하니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어떻게 이 수업을 듣게 됐는지 물었더니 지우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창업 특강에서 알게 된 한 언니가 드림 마켓에서 꿈 사고 아기 이유식 사업 요새 대박 나고 있거든요. 저도 꿈 사보려다가, 차라리 제가 길몽을 계속 꿔서 남편한테 파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직접 수강하게 됐어요.
저도 성공드림님 꿈 사고 샀던 로또 4등 당첨되면서 믿게 됐어요. 번호 4개가 딱딱 맞아떨어지는데 소름 쫙 끼쳤어요.
직접 덕 보신 거 진짜 부럽다. 저도 성공드림님 꿈 한번 사봐야겠네요.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