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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셀러> 1부

꿈 팔이에 관한 흑빛 상상

by 인플리

보희 님께


제가 꿈 파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제 짧은 돼지꿈이었어요.


꿈에서 요트 투어를 하러 항구에 가고 있었죠. 출항 시간이 다가와서 서둘러 걷는데, 길 오른편에서 갑자기 새끼돼지 한 마리가 톡, 튀어나왔어요. 웬 돼지야? 하고 비껴가려했죠. 그런데 그 돼지가 제 운동화 앞코에 코를 바싹 대고 절 밀었어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죠. 제가 왼쪽으로 돌아가려하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려하면 오른쪽으로 바짝 따라붙었어요. 축구 경기장에서 공격수를 끈질기게 저지하는 수비수처럼요. 점프해서 겨우 따돌렸는데 웬걸. 길 맞은편에서 이번엔 돼지 한 무리가 오더라고요. 경악하다 깼죠.


잊고 있던 이 꿈을 떠올린 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뒷자리 동료들이 하던 이야기 덕분이었어요.


어? 이 주임님 웬 로또?

출근길에 오늘의 운세 봤는데요, ‘금전운이 좋으니 복권을 사는 것도 좋습니다’라 떠서요.

오오. 당첨되면 한 턱 쏘기에요.

쏠만큼 당첨이 돼야 말이죠.

주임님은 왠지 될 거 같아요. 작년 송년회 경품 추첨 때 블루투스 스피커도 받았잖아요.

운이 좋았죠.

운은 따라주는 사람한테 계속 따르더라구요. 전 예전에 돼지꿈 꾸고 복권 사본 적도 있는데, 꽝이었어요.


바로 이 때 꿈에서 킁킁대던 돼지들이 생각난 거예요. 돼지가 여러 마리면 당첨 확률이 더 높거나, 더 큰 액수에 당첨되지 않을까 기대됐죠. 바로 ‘돼지꿈’, ‘복권’을 검색했어요. 돼지꿈 종류별 해몽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여러 마리 돼지가 길을 막는 꿈은 큰 횡재의 조짐입니다.’


전 점심시간에 편의점에서 바로 로또를 샀어요. 마침 삼각김밥을 사면 탄산음료를 무료로 주는 프로모션을 하길래, 야외 나무식탁에서 그걸로 점심을 때우면서 번호를 찍었죠. 1줄에 6개씩, 총 5줄의 번호를 찍고, 응모했어요. 번호 추첨일인 토요일이 가까워질수록 어찌나 기대감이 커졌는지. 처음엔 물풍선만 했던 기대감은 1등 평균 당첨금이 21억이라는 기사를 본 날엔 애드벌룬만큼 크게 부풀어 올랐어요. 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한강뷰 아파트도 부동산 앱에서 점찍어 두었어요. 로또 용지를 간수하는 데도 예민해졌죠. 용지를 수첩 사이에 꽂아서 집 책상 서랍에 깊숙이 넣고 문을 잠갔어요. 퇴근하고 열어보고, 출근 전에 열어보고. 1층에서 택배를 가져오느라 한 3분 간 집을 비웠다 올 때도 서랍이 잘 잠겨 있는지 손잡이를 흔들어서 확인했어요. 이 난리를 친 결과는 어땠냐구요? 토요일 저녁에 확인해보니 당첨번호는 제가 찍은 번호를 아슬아슬 다 비켜갔더라구요.


일요일 점심, 찜닭집에서 만난 친구 민서한테 푸념을 늘어놓았어요. 민서가 찜닭을 치즈로 돌돌 말면서 물었어요.


로또 산 날 뭐 다른 좋은 일은 없었어?

왜?

다른 데로 복 샜나 해서. 누가 커피라도 쏜 적 없어?

없었는······ 아! 캔커피 공짜로 받았다. 편의점 삼각김밥 음료증정 프로모션으로.

그거로 샜네.

뭐?

캔커피 한 천 원 하잖아. 천 원 공짜로 번 거지 뭐! 큭큭.

야! 로또 오천 원 주고 샀어. 천원 벌었음 사천 원 손해거든?


민서는 어찌됐건 지나간 돼지꿈엔 그만 집착하라고 얼버무렸어요. 대신 자기처럼 매주 로또를 꾸준히 사 보라 했죠. 민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 출석체크 하듯 회사 앞 로또 판매점에 들른대요. 응모한 로또 용지를 부적처럼 지갑 한쪽에 모시고 다닌다고 했어요. 추첨일인 토요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벼락부자가 되는 상상에 기분이 좋아진다나요.


야, 기대할 게 있는 토요일이랑 없는 토요일은 하늘과 땅 차이야.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돼지꿈 같은 미신에 기대는 것보다 민서처럼 꾸준히 로또를 사는 게 합리적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낮은 당첨 확률도, 어쨌든 시도해야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로또를 매주 사되,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당첨 확률을 높이자, 싶어서 ‘로또 당첨 잘 되는 법’을 검색했죠. 한 기사는 응모 방식을 당첨 확률이 높은 순으로 알려주더라고요. 자동으로 임의 추출된 당첨번호를 받는 ‘자동’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직접 예상 당첨번호 6개를 고르는 ‘수동’, 꼴찌가 당첨번호 중 일부는 직접 고르고, 일부는 자동으로 받는 ‘반자동’이었어요. 로또를 사지 말라고 당부하는 기사도 봤죠. 첫 문장엔 모건 하우절이라는 경제학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어요.


복권은 누가 살까?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돈의 심리학』, 137쪽.


두꺼운 코트로 애써 몸에 붙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명찰을 가려왔는데, 코트를 홱 열어젖혀 그 명찰을 들추어내는 듯한 문장이었어요. 버둥거려 봐도 소용없어서, 빈약한 확률에 기대 가난을 벗어나려 한 마음도 홀라당 들킨 것 같았죠. 모건이 ‘비합리적이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묘사한 미국의 저소득 복권 구매자의 심리가 딱 제 심리였어요. 한 마디로 ‘돈을 주고 꿈을 사는’거라나요. 저소득자는 복권을 사면서 고소득자가 이미 갖고 있고, 당연시하는 좋은 것들을 꿈꿔 볼 기회를 사는 거라 해요. 미국의 최저소득 가구는 1년간 복권을 사는 데 평균 412달러를 쓰는데, 이 금액은 최고소득 집단의 복권 구매액보다 4배나 많대요. 근데 벼락같은 비합리성에 기대는 심리, 저는 이해해요. 이런 게 아니면 부자가 될 수 없는걸요. 대체 합리적인 부자들은 어떤 확신을 갖고 돈을 차곡차곡 쌓아갈까요? 나한테는 왜 그렇게 확신을 주는 게 없을까요?


아무튼, 기사 끝의 한 광고 창엔 ‘꿈을 사고 팝니다. 인생역전을 사고 팝니다.’란 문구가 박힌 광고가 있었어요. 클릭했더니 ‘드림 마켓’이라는 홈페이지가 떴어요. 돼지꿈 같은 좋은 꿈을 꾼 사람과 그 꿈을 원하는 사람이 꿈 거래를 하는 곳이었어요. 전 생각했어요. 경제 불황이라 별의별 사기가 다 판을 친다고. 이때까지만 해도 꿈 거래가 신종 사기라고 확신했거든요. 월요일 점심, 백반집에서 같은 팀 동기 재경이 얘기를 들을 때까진요.


너 이우찬 알지?

응. 드라마 <블랙 알리바이> 남주?

어어. 걔 그거로 작년에 연기대상 탄 게, 걔네 아빠가 꿈 산 덕이라는 썰이 있어.

꿈을 샀다고?

드림 마켓이라고 꿈 사고파는 곳이 있는데, 걔네 아빠가 ‘드림 셀러’인가? 꿈 파는 사람한테서 백만 원에 귀한 돼지꿈을 샀었대. 엄마 돼지가 새끼돼지 수십 마리 낳는 꿈. 해몽이 ‘행운이 막 굴러 들어오는 꿈’이래나.

에이. 나도 어쩌다 광고 타고 그 사이트 가 봤는데, 순 사기꾼 집합소더만. 판 사람이 진짜 그 꿈 꿨는지 아닌지 확인 할 방법이 없잖아.

후기 보고 믿는 거지. 너도 후기 엄청 따져서 사주 보러 가잖아.


순간 찔렸어요. 저도 후기가 많은 무당님 위주로 사주를 보러 다닌 적이 많거든요. 마침 직원분이 반찬과 국을 세팅해주러 오셔서 당황한 얼굴을 안 들켰죠. 재경이한테 미역국을 떠주면서 말을 돌렸어요.


암튼. 내가 보기에 이우찬은 그 꿈 아니었어도 뜰 타이밍이었어. 재작년 <딜러> 때부터 연기 잘한단 얘기 많았잖아.

야. 요즘 연기 잘한다고 다 뜨냐? 빽이나 운이 따라줘야 뜨지.


재경이는 왠지 모를 확신에 차 있었어요. 드림 마켓 영업사원인 줄 알았다니까요. 전 재경이가 금방 꿈을 살 것 같아서 제 굴욕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어요.


돼지꿈 그런 거 다 미신이야. 나도 얼마 전에 돼지꿈 꾸고 산 로또 꽝이었어.


그런데 “지도 꿈 믿었으면서”라며 타박할 줄 알았던 재경이가 의외의 이야기를 했어요.


넌 그럼 ‘드림 셀러’ 쪽인가보다. 원래 자기가 꾼 꿈으로 자기는 덕 잘 못보고, 남한테 덕 잘 주는 쪽으로 타고난 사람들이 있대.


재경이는 드림 셀러 홈페이지의 꿈 거래가를 보여주면서 말했어요.


너도 여기서 한 번 꿈 팔아 봐. 떼돈 벌지 누가 알아.


손사래를 쳤지만, 솔직히 무슨 선택받은 사람이라도 된 양 으쓱한 기분이 들긴 해죠. 로또가 꽝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구요.


퇴근하고 한번 드림 마켓 홈페이지에 접속해봤어요. 소개 탭에서 전 당신의 이름을 보았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드림 셀러, 김보희’.


당신의 꿈 이야기를 어렸을 때 만화로 된 역사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어느 날, 서라벌 남산에서 눈 오줌으로 온 서라벌을 가득 채우는 꿈을 꾼 당신은 동생 문희에게 꿈 내용을 이야기해주죠. 예사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 문희는 비단치마를 꿈 값으로 치르고, 당신한테서 그 꿈을 사구요. 열흘 뒤, 당신의 첫째 오빠인 김유신이 한 남자를 집에 데려와 가죽 공을 차고 놀다가 옷고름을 밟아서 옷이 찢어져요. 친구의 옷을 꿰매달라고 오빠가 부탁하자 당신은 거절해요. 사소한 일로 귀공자를 가까이 할 수 없다면서요. 문희는 부탁을 들어주고 옷을 꿰매다가 그 남자랑 눈이 맞고, 임신까지 하게 돼요. 둘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죠. 그런데 옷이 찢어졌던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김춘추. 신라 제 29대 왕, 태종무열왕이죠. 문희는 자동으로 문명왕후가 되고요.


길몽으로 친자매를 왕후로 만든 당신을, 드림 마켓 대표는 성녀처럼 묘사하고 있었죠. 그런 당신한테 영감을 얻어서 길몽을 꾼 사람과 길몽을 원하는 사람이 거래하는 플랫폼인 ‘드림 마켓’을 출시하게 됐다나. 원래 운영하던 ‘드림 클리닉’을 발전시켜서요. 마침 가위눌리는 꿈 같은 흉몽을 꾸지 않게 돕는 수면과학 서비스 사업을 하다 잘 안되던 때에, 당신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대요.


드림 마켓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서로 사고팔고 있었어요. 꿈 가격은 일 원부터 수천만 원까지 다양했죠. 일 원짜리 꿈은 위약 효과를 노린 것 같았어요. 적은 액수지만 어쨌든 대가를 주고 행운을 사들이는 거니, 일이 조금이라도 더 잘 풀릴 것 같다는 위안감을 주잖아요. 일 원짜리 꿈은 가난한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한테 인기가 많더라구요.


전 판매량 순으로 정렬해서 유명한 드림 셀러를 살펴보았어요. ‘탑3 파워 드림 셀러’가 있었는데, 3위는 ‘퀸오브드림퀸’, 2위는 ‘다이뤄드림’, 1위는 ‘드림킹’이었어요. 드림킹은 바로 이우찬의 아버지에게 꿈을 팔았다는 드림 셀러였죠. 이 사람의 꿈 구매후기는 마치 ‘덕 본 사람’들의 간증 같았어요. 이우찬 아버지로 추정되는 ‘유명배우 OOO의 아버지’부터 ‘아이돌 기획사 XX 대표’, ‘대기업 회장 A씨’, ‘한남동 사모님 김 모 씨’ 까지 생생한 덕 본 후기가 넘쳐났죠.


드림킹님 아들 인생역전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업 대박. 드림킹님 꿈은 늘 믿고 삽니다.

킹님 덕분에 저희 딸 명문대 합격했어요!! 딸 학교 친구 엄마들한테 추천 다 했어요^^


댓글 조작을 의심했다가, 이 많은 후기를 다 알바생이 썼을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믿는 사람이 손해’라며 드림킹의 꿈을 치켜세우는 후기에도 살짝 설득이 되었구요. 드림킹 소개글을 읽다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했어요. 드림킹도 저처럼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는 거예요. 장난삼아 친구한테 판 꿈으로 친구가 복권에 당첨되면서 드림 셀러가 되었다나. 드림킹은 ‘돼지 꿈 등의 길몽을 훈련을 통해 자주 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지론으로 드림 마켓이 운영하는 ‘드림아카데미’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었어요. 인터뷰가 인상 깊었죠.

‘돼지 그림 하루에 10번 이상 그리기’, ‘돼지 사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해 두기’ 등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미지 반복 각인법을 익히면 누구나 원하는 꿈을 꿀 수 있어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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