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일을 하다 보면 “임팩트 있게 만들어주세요”라는 요청을 자주 듣습니다. 카테고리를 불문하고 다양한 광고주가 공통으로 하는 요청이죠.
처음에는 ‘임팩트’가 ‘비주얼 임팩트’를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AI 기술이나 최신 촬영 장비, 독특한 아트 세트를 활용하면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곱씹어 보니, 더 근본적인 임팩트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스토리가 주는 임팩트. 이는 기존의 스토리를 판에 박힌 ‘클리셰’로 전락시키고, 해당 브랜드나 제품을 카테고리에 대한 인식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유니크한 브랜드/제품으로 만들어줍니다. 단순히 눈을 사로잡는 것을 넘어,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충격을 남기면서요.
1999년 개봉한 영화,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도 이러한 스토리 임팩트를 잘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6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2억 5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전 세계를 매료시켰는데요, 성공 비결은 바로 공포영화의 ‘스토리 문법’을 정면으로 뒤집은 데 있었습니다. 기존 공포영화는 주로 기성 배우의 연기력, 치밀하게 설계된 세트, 실력 있는 카메라 감독의 정교한 카메라 앵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명 및 특수 효과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악령이나 연쇄살인마처럼 관객들이 명확한 공포를 느끼게 될 대상도 직접 등장했죠. 하지만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는 마치 대학생들이 찍은 캠코더 속 영상처럼 어딘가 어설픕니다. 초점이 흐리고, 화면도 불안하게 흔들리죠. 이는 정말 비전문가의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영화에는 숲에 전해 내려오는 ‘블레어 위치’ 전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메릴랜드주의 숲으로 들어간 세 명의 영화학과 학생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숲 속 깊이 들어갈수록 길을 잃어 당황하고, 밤마다 기이한 소리에 괴로워하며, 결국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공포의 대상은 한 번도 화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 밤새 텐트 주변을 맴도는 인기척, 나무에 매달린 기괴한 인형들만 공포의 실체를 암시할 뿐이죠. 결국 공포에 완전히 잠식되어버린 세 학생은 극한의 심리적 압박을 겪으며 서로를 점점 의심하고,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려 무너져 내립니다. 관객은 보는 내내 세 학생의 불안에 함께 휘말리고요.
즉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는 기존 공포영화의 전형적 스토리 문법이던 ‘보이는 공포’를 ‘상상하게 만드는 공포’로 전환시켜 현실감과 심리적 불안을 공포의 새로운 무기로 자리매김 시켰습니다. 영화 개봉 전, 제작진은 인터넷에 ‘실종된 학생들의 기록’이라는 가짜 웹사이트까지 만듭니다. 이 사건이 실제라는 느낌을 극대화한 장치로서요.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다’는 새로운 스토리를 각인시킴으로써, 이 영화는 기존 공포영화의 전형성을 파괴한 작품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문법을 뒤집은 스토리의 임팩트를, 전 이 광고를 통해 강하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관광공사와 HSAD가 함께 만든 <Feel the Rhythm of Korea>입니다. 기존 관광 광고에는 몇 가지 전형적인 씬이 있었습니다. 예로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전통시장의 한 좌판에 앉아서 한국 전통 음식을 먹고 탄성을 지르거나, 한복을 차려입고 궁을 감상하는 씬이요. 즉, 기존 관광 광고는 외국인 관광객이 하는 체험 혹은 여행지 자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마치 세상에 기쁨이란 감정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죠.
그런데 <Feel the Rhythm of Korea>는 이러한 관광 광고의 공식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들은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엠비규어스 컴퍼니 댄서들의 무대, 즉 조연으로 확 물러나거든요. 댄서들은 판소리와 비트가 결합된 중독적인 아래 가사 위에 자신만의 리듬을 녹여, 한국 곳곳을 누빕니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기존 관광 광고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관광지 앞 셀카 찍는 연인’도 주변적 요소로 물러납니다. 원래라면 빅 클로즈업을 받았을 궁 앞 수문장보다, 옆을 지나치는 장난기 가득한 댄서들에게 더 눈이 가고요. 댄서들을 따라 배경 곳곳을 보다 보면 “저기 가면 나도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흥미가 생깁니다. 주인공이던 배경을 과감히 밀어내자, 그 자리에 새로운 상상이 밀려오게 된 것이죠.
또한, 이 광고는 전통을 대하는 방식도 새롭습니다. 전통 건물을 박제된 유산처럼 고상하게 보여주었던 기존 문법과는 달리, 판소리와 비트의 결합 속에 전통을 현대적이면서 생동감 넘쳐 보이게 하니까요. 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공유, 확산하고 싶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챌린지’ 콘텐츠도 생겨나게 했습니다. 광고는 ‘일방향적 콘텐츠’에서 ‘참여형 문화 콘텐츠’로 진화했고요.
광고를 만들다 보면, 담당 브랜드나 카테고리를 너무 아끼는 나머지 ‘오랜 팬’의 시선에 갇히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기존 관광 광고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이 주인공으로 내세워진 배경에도 깊은 팬심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고 시청자는 팬이 아닙니다. 무관심한 소비자의 이목을 끌려면, 궁금증을 자극하는 새로운 관점을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주인공이었던 여행지를 과감히 조연으로 내리고, 보는 사람들의 흥미와 새로운 상상이 주연이 되게 한, <Feel the Rhythm of Korea>처럼요. 여러분의 스토리 속 주연도 과감히 바꿔보세요. 그 생경함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 열쇠가 되어 줄 것입니다.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영상 스틸 컷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P1CnWI62Ik&t=44s
<Feel the Rhythm of Korea> Truth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