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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ug 09. 2022

구급 출동하다 맞아본 사람 손!

2014년 11월 9일

39살, 소방관 5년 차에 구급대원으로는 3년 차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인구 70만의 도농복합도시에서 구급대원(주로 운전하며 응급처치 보조, 간혹 주처치 담당인 후배가 휴가를 갈 때면 주처치 담당으로 변신)으로 일하고 있었다.      


저녁 10시쯤이었다. 친구가 아프다는 신고였다. 일단 우리는 출동할 때 상황을 단정 짓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신고자가 아픈 사람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동할 때는 필요하다고 여기는 장비는 모조리 들고 갈 때가 많다.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다가오며 저쪽 건물의 지하 1층 계단에 친구가 쓰러져있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을 마치마자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겼는지 그대로 가버렸다. 같이 있던 후배가 그 사람을 불렀지만 그대로 뛰어가는 바람에 더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했다. 일단 쓰러져 있다는 사람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바리바리 챙겨간 장비를 지니고 친구분이 가리킨 건물로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서자 3m 앞에 주저앉아 있는 40대 정도의 남자가 보였다.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지만 묵묵부답, 술냄새가 많이 났다. 어깨 부위를 두드리며 계속 말을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1분쯤 시간이 지났어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목과 이어진 어깨 부위를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조금 힘주어 눌렀다. 그제야 반응이 온다.  

    

나 : 선생님, 정신 차려보세요, 어디 아픈데 있어요?

주취자 : 하지 마. (다시 아무 말 없음)

나 : (어깨 부위를 2번 더 눌렀다) 여기에 계속 계시면 안 됩니다. 어디 아파요?

주취자 : (갑자기 주먹을 날린다)

나 : (맞은 순간 고개가 돌아갔다. 0.5초쯤 지나 고개가 돌아갔고 내가 맞은 걸 알게 됨, 안경이 저 멀리 튕겨져 있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 나왔지만 꾹 참으며 안경을 주웠다. 얼른 지하 1층에서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옴) 00야, 철수하자.     


같이 출동한 후배를 데리고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내가 폭행당한 2014년엔 우리 쪽에는 처벌 권한이 없어 경찰과 관할 소방 지휘부 모두 출동해서 폭행사건 처리를 했었다.) 무전으로 폭행 사실을 상황실에 알렸다. 상황실에선 곧 경찰과 소방서의 현장 지휘관이 폭행당한 곳으로 출동할 테니 구급차에 타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 우리에게 아픈 친구를 떠넘기고 가버린 줄 알았던 주취자의 친구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주취자의 친구 : 아픈 사람 처치는 왜 안 하고 여기 나와 있어요?

나 : 방금 무전 들으셨죠? 친구분은 응급 처치하려고 다가간 저희에게 아무런 협조도 안 하셨고

오히려 저를 때리셨네요. 이런 경우는 응급처치 안 합니다. 대신 경찰과 저희 지휘부가 이쪽으로 올 겁니다.

주취자의 친구 : 아니, 언제 그랬는데요?

나 : 조금 전에 친구분이 제게 폭력을 쓰셨네요, 기다려보세요, 경찰이 오면 그때 말씀하세요.     


후배와 구급차로 돌아가 꺼내놓은 장비를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냥 성질 같아선 맞은 것의 몇 배를 돌려주고 싶었지만 이 순간 난 구급대원이었다. 내가 그럴 수는 없었다. 5분 정도 기다리자 경찰이 왔고 뒤를 이어 관할 소방서의 현장 지휘관이 도착했다. 그 지휘관은 나를 보더니 “잘 참았어, 고생했어”라고 말하며 힘내라는 듯이 어깨를 두드렸다. 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같이 출동한 경찰과 함께 지구대로 갔다. 그리고 피해사실에 관련된 조서를 작성하고 지장을 찍었다. 그때까지도 날 때린 주취자는 여전히 자기는 날 때린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바로 사무실로 복귀했다. 센터장님도 퇴근하셨다 내 폭행 사실을 아시고는 다시 출근하셨다. 센터장님(지금은 정년 퇴임하셨다. 해병대 출신으로 윗사람보다는 아랫사람들을 잘 챙겨주셨던 따뜻한 분이셨다) 역시 고생했다고 격려해주셨다. 괜찮습니다라고 윗분께 대답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업무보고(현장 출동해서 폭행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내용, 사고자 인적사항, 출동 내용 등을 시간별로 적은 1쪽 보고서)를 작성하는 후배 옆으로 가서 부족한 내용을 보충했다. 출동할 때는 저녁 10시였는데 경찰 조사와 업무보고를 마치니 12시가 넘었다. 우리 구급차가 자리를 비우면 그 비운 자리를 메꾸느라 다른 구급차들이 그만큼 힘들어진다. 다시 상황실로 전화해 00 구급차가 폭행 관련 조사가 끝나 다시 출동할 수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다시 출동대기를 시작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날 때린 주취자의 처남이란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날 때린 사람은 여전히 때린 걸 부인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 처남이란 분은 날 찾아와 합의를 해달라고 했다. 원칙을 말씀드렸다.      


나 : 제가 개인적으로 맞은 거면 합의합니다. 하지만 이건 구급 출동 중에 일어난 폭행사건입니다. 이런 경우 위에다 무전 보고하는 순간 합의는 없습니다. 그건 제 멋대로 결정하는 것이 위에 계신 높은 분들이 정한 거라서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미 관련 내용은 공문서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주취자의 처남 : 그래도 합의 부탁드립니다. 

나 : 위에 보고하는 순간 제 개인 문제가 아니고 조직의 문제가 됐습니다. 저 합의 못합니다.

주취자의 처남 : 그래도 합의 부탁드립니다.   

(계속 이어지는 간청과 거절) 


20분 정도 말씀드렸을까? 날 때린 당사자도 아닌 처남분이 와서 간청을 하시는데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도 힘들었다. 때마침 구급출동이 걸려 출동 사실을 알리고 자리를 비우게 됐다. 그날, 연이은 출동으로 구급차는 몇 시간이 지나 사무실로 복귀했다. 알고 보니, 주취자의 처남이란 분은 내가 출동 나간 이후로도 몇 번이나 사무실을 찾아와 합의해달라는 사정을 했었다. 어쩌겠는가? 폭행 사실을 보고하는 순간 폭행 관련 합의는 절대 없다고 공문서에 작성되어 있는데 그걸 나 혼자서 무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010년 초반만 해도 구급대원이 현장 출동 중에 맞으면 오히려 윗분들에게 혼났었다. 어떤 행동을 했길래 민원인이 때리냐고. 그리고 맞더라도 경찰 조사과정 중에 합의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자 구급대원의 사기는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다 출동 중 소방관이 폭행당하면 현장 지휘부와 경찰이 출동하며 당연히 합의는 없다는 내용의 공문서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날 때린 주취자는 결국엔 폭행 사실을 인정했고 벌금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주먹은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다. 나와 주변 사람을 지킬 때만 써야 한다.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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