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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ug 04. 2022

새벽 1시 30분,
황당한 산악구조 출동

2018년 여름

구급대원으로 한참 바삐 출동을 다닐 때였다. 일하는 지역이 나름 구급수요가 많은 곳이라 낮이건 밤이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시로 구급출동을 나갔다.      


아마 6~7월 사이에 야간근무를 하는 날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애타게 우리를 찾는 분들이 많았다. 18시부터 01시까지 저녁만 겨우 먹고 6건의 출동을 마쳤다. 이제 조금 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업무를 마무리하고 후배들과 서둘러 대기실로 들어갔다.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서 일하는 구급대원은 다 알 것이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안 그러면 쉬는 시간이 아예 없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사람이 계속 긴장한 상태로 지낼 순 없다. 그래서 짬이 날 때마다 밀린 행정업무를 얼른 마무리하고 남는 시간에 10분이라도 운동을 한다던지, 피곤하면 잠시 의자에 기대 눈을 감을 때도 있다. 그렇게라도 느슨하게 지낼 수 있는 여유를 즐겨야 막상 출동 나갔을 때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   

   

대기실에 들어오니 01시 20분이다. 출동 갔다 와서 차량 정리하고 잠시 밀린 행정업무 하는데 20분이 금방 지나갔다. 얼른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소방관은 야간 근무 중 쉴 수 있는 대기실이 있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습니다. 대신 출동벨이 울리면 바로 뛰어나갑니다).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출동벨 소리가 들렸다. “00 산 00 바위 추락환자 발생, 00급차 산악구조 출동” 상황실에서 출동 지령이 내려왔다. 5km 떨어진 00사 주차장까지 차로 간 다음 정상까지는 빠르면 1시간, 보통 1시간 30분쯤 등반해야 하는 출동 코스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고 오늘은 새벽부터 운동 제대로 하는 날이구나! 더구나 지금은 새벽 1:30 산속은 어두워서 발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출동하기 전 헤드랜턴과 가져가야 할 준비물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아무 이상 없었다. 00사 주차장까지 간 다음 차를 주차하고는 서둘러 등반을 시작했다. 00 바위는 산 정상 바로 밑에 있어서 그냥 정상까지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상황실에 등반 시작한다는 무전을 남기고 3명이 00 바위까지 등반을 시작했다. 바로 상황실에서 되묻는다. 

상황실 : 사고 현장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구급대원 : 1시간 소요 예정     


출발한 지 겨우 5분 지났는데 벌써부터 숨이 거칠어진다. 속도가 빠르니 그럴 수밖에. 더군다나 심장 제세동기(약 10kg 정도)에 응급처치 가방에 무전기(TRS, UHF) 2개를 챙겼다. 그나마 3명의 구급대원 중 2명이서 짐을 나눠 들 수 있으니 1명은 가벼운 몸으로 갈 수 있다. 20분마다 1명씩 돌아가며 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산악구조 출동은 보통 구조대와 구급대가 같이 나가거나 구조대가 없을 경우에는 산악구조 출동을 관할하는 안전센터의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이 같이 나간다. 어느 경우든 구급대원은 필수로 끼어 있다. 1분이라도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보통 등산과는 달리 속도를 내어 등반을 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1시간 반 걸릴 거리를 1시간 만에 주파한다. 그래서 금방 호흡이 거칠어지고 체력도 뚝뚝 떨어진다. 


이번 추락사고가 일어난 곳은 서울과 경기도가 맞붙어 있는 산이어서 구조대원은 서울 쪽에서 구급대원은 경기도에서 출동했다. 서울 쪽에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다고 하는데 현장에 언제쯤 도착하는지, 요구조자 상태는 어떤지 더 이상 추가 정보는 내려오지 않았다. 상황실에서 무전이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가던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주위는 깜깜하고 오직 랜턴 불빛만 보였다. 빨리 가야 하는 건 알겠는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게 평소 출동하는 것만큼 빠르게 되지는 않았다. 1시간쯤 걸려 사고 현장으로 짐작되는 00 바위 인근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보다 서울에서 먼저 출발했다고 분명히 무전에서 들었는데, 우리가 현장에 올 때쯤이면 서울 쪽 구조대원이 이미 현장처치를 하고 있어야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주변이 조용할 리 없었다. 혹시 우리가 사고 현장과 다른 위치로 올라왔나 싶어 상황실로 무전을 했다.     


구급대원 : 00 구급 현재 00 바위 인근 도착, 서울소방 현장 도착 여부 알려주기 바람

상황실 : 잠시 대기(서울과 경기도는 상황실-신고 접수 후 처리하는 곳-이 서로 다릅니다)     

잠시 후

상황실 : 서울소방에서 15분 전 요구조자 구조 완료, 현재 하산 중, 00 구급은 철수하기 바람

구급대원 : (약 10초간 정적, 짜증 많이 났지만 참았음) 현장에서 철수하겠음     


서울과 경기도가 상황실이 달라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서울에서 우리보다 먼저 구조했으면 얼른 무전으로 알려줘야 현장 대원들이 헛고생을 안 하지, 15분 전쯤이면 한참 헉헉대며 산을 오르고 있었을 때였다. 이게 무슨 조화지 싶었다. 마음속으로 각종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새벽부터 요란하게 운동한 걸로 넘기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려줘야 현장에서 그에 맞춰 행동할 게 아닌가?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무전으로 누구의 잘못인지 따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서울 쪽에서 요구조자를 잘 구조해서 내려갔다니 다행이었다. 하소연할 곳 없는 내 마음은 누가 알아줄까? 2시간 넘도록 요구조자를 찾아 어두컴컴한 산을 탔던 황당한 새벽의 구조출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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